어째서 나는 이렇게 하루 종일 졸린가
영화 <수면의 과학>에서 제목을 따오기는 했지만, 오늘 쓸 글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순수하게 나의 잠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래 나는 잠이 많긴 하지만 근래에는 정말 하루 종일 졸리다. 아마 최근 연이은 사건들에 의해 생활 리듬이 깨진 탓일 것이다. 친구네 고양이를 잠깐 맡아줬고 - [1101] 01_고양이와 사는 법을 읽어보면 왜 고양이가 있다고 수면에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 급작스레 몸살이 왔다가,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 오고, 인후염에 걸리고, 평일 새벽에 작업 지원을 했다. 평범한 수면 시간을 가진 사람이라도 분명 피곤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인후염 때문에 처방받은 약이 한층 졸음을 부른다. 왜 어떤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콧물감기 때 주로 처방되는 항히스타민제가 진정 효과가 있어서 그렇단다. 히스타민은 외부 자극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면서 중추 신경을 흥분시키는데,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하면 이 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 등의 증상을 가라앉히면서 동시에 진정 작용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알레르기 반응처럼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던 것을 가라앉혀 놨으니, 필연적으로 졸려질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생물이 잠을 자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입력된 정보들의 취사선택해서 새로운 기억이나 새로운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낸다고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한다고도 하고, 확실한 해답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졸음을 유발하는 약을 합성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각성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심지어 마취를 하면 실제 자는 것은 아니지만 마취를 당한 사람은 자고 일어났다고 느끼는 상태도 겪게 된다. 마치 미로로 들어가는 방법도 알고, 나오는 길도 알고, 심지어 날마다 모든 사람들이 미로를 통과해서 나오는데, 미로의 모습은 아무도 그릴 수 없다, 그런 느낌이다.
잠에 대한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꿈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이따금 지구 종말과 관련된 꿈을 꾼다. 그게 나의 감각 기관을 통해 수용된 정보 중에서 무언가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이거나 미래의 걱정거리에 대한 시뮬레이션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꿈을 꾸고 나면 절절하게 마음이 아플 때도 있고, 가장 최근에 꿨던 꿈처럼 팝콘 씹으며 영화 한 편 본 것 같이 흥미진진한 경우도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아마 나는 나의 세계를 - 다시 말해 나 자신을 - 뿌리째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큰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항상 지구는 멸망하고, 나는 항상 살아남는 쪽에 몸 담고 있었던 게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정말 나의 세계가 한 번 싹 리뉴얼 되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아마도 사는 게 피곤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바로 앞의 문장을 보면 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나도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나 자신임에도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리고 종종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나기도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내가 나를 두고도 헤매고 사는 것에 암담함을 느끼고, 한편 나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몸이 피곤할 때 졸린 것이 당연하듯, 내가 자연스럽게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도 아무 죄책감이 없었으면 한다. 뭔가 두서없고 논리없는 결론인 거 같지만 이게 다 항히스타민제 때문이다. 따라서 약의 경고문구에 쓰여 있었듯, 기계 장치 - 지금은 이 노트북 - 의 조작을 중단하고 일찌감치 잘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 밤은 모두들 지구 종말일랑 걱정하지 말고, 그냥 푹 잠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