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11_주말의 명화

TV 보는 방법의 미래는 과연?

by 달을읊다

지금도 하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는 매주 토요일 밤에 <주말의 명화>를 보았다. 한국영화도 있었겠지만, 보통 한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린이들도 시청해야 하니까 아마 끔찍한 장면이나 너무 야한 장면은 편집을 했을 것이다. 어떤 영화들을 방영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야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절이니까 꼬박꼬박 열심히 봤던 것 같다.


2000년 초반, 야자가 있었다. 토요일에도 당연히 등교를 했고, 일요일에는 보통 밀린 잠을 잤다. 그래서 간신히 일요일 낮 시간대에 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그도 저도 아니면 <전국 노래자랑>을 보는 것 말고는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었다. 한 번 안 보기 시작하니 그다지 TV를 열심히 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때문에 취업 후 자취를 하면서 한 번 TV 없이 살게 되자, 지금까지도 TV 없이 잘 살고 있다.


아마도 예능과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도 TV를 보지 않는 삶에 한몫했던 것 같다. 따라서 회사에서 사람들이 지난 주말에 본 TV 프로그램이나 새로 시작한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흡사 코끼리에게 청소기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반응 정도밖에는 하지 못한다. 케이블 방송국에 뭐뭐가 있는지, IPTV와 셋톱박스는 각자 무슨 역할을 하는 장비인지, 본 방송 시간에 TV를 보지 않고 나중에 다시 보는 건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나의 일상에도 결국 넷플릭스가 찾아들었다. 남자 친구가 다른 친구 한 명과 계정을 공유하기로 하면서 월 6천 원 정도를 내기로 합의한 것이다. 내가 혼자서는 뭘 보려는 생각은 잘 안 하고, 남자 친구랑 있을 때나 넷플릭스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뒤적여 본다. 클라우드 초창기 IaaS 개념을 배우던 시절 넷플릭스 서비스를 '온라인 DVD 대여점' 정도로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 꽤 옛날 얘기다 -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망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10년 동안 TV 없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까지 흘러들어 왔다. 하지만 <BBC 셜록>을 제외하고는 미드니 일드니 하는 세계를 온전히 피해 간 나이기에, 제 아무리 남자 친구가 끈질기게 권해도 <데어데블>이나 <브레이킹 배드> 등 유명한 시리즈물에는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다. 대신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 <72종의 귀여운 동물들> 같은 - 영화를 본다.


이번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과 <베이비 드라이버>였다. TV를 안 보는 것과는 별개로 유튜브에서 꾸준히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은 보고 있는데, 거기서 다루었던 영화 중에서 관심이 있었던 작품들이다. 영화를 어디 나가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그냥 본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그것도 영화관에서 개봉하고 있는 영화나, 무작위로 틀어주는 대로 보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넷플릭스는 내가 이미 본 작품, 보려고 찜해둔 작품을 기반으로 내가 흥미 있어할 만한 작품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것도 제법 검증된 감독의 검증된 작품들이.


확실히 옛날과는 영화를 고르는 방식도, 영화를 보는 방법도 참 많이 변했다. 이미 반쯤 넷플릭스에 발을 담갔고, 소리 소문 없이 TV를 넘어선 영상 매체들이 내 주변을 기웃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가겠지. 그냥 회사 다니며 도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기술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내 삶에 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편리하고 멋진 기술의 시대가 되니까, 가끔 <주말의 명화>를 보던 시절이 낭만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온 가족이 지금 내가 쓰는 모니터만 한 TV 앞에 모여, 모로 눕고 남의 다리를 베고 눕기도 한 채로 매주 똑같은 목소리로 더빙된 영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졸기도 하던 풍경이 말이다. 손에 쥐고 보는 프라이빗한 모니터의 시대를 살면서, 이후의 매체는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가로 스크롤로 영화를 골라, 둘이서 아이패드를 머리 맞대고 보던 것도 언젠가 낭만적 풍경이 되어 가려나.


* 제목 사진의 출처는 Pixaba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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