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18_기특하다

살아남은 화분에게

by 달을읊다

2017년 초반에 화분을 하나 샀다. 다육이조차 여러 차례 죽인 터라 생명력 강한 식물이었으면 했다. 집에는 그다지 있지 못하니까 사무실에 둘,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분을 찾기로 했다. 회사 근처 꽃집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사온 식물의 이름은 게발선인장이었다. 몇 개의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덥석 사 왔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 꽃이 화려했다. 그리고 말도 못 하게 연약한 꽃이라, 피운 지 하루 만에 지고 말았다. 꽃송이 몇 개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에는 그저 부쩍부쩍 잎을 키웠다. 이름대로 게의 집게발처럼 생긴 하나의 잎에서 세 장씩, 뾰족뾰족한 조그마한 잎이 달리는 게 귀여웠다. 2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물을 주고 출근하자마자 빛이 드는 장소로 옮겨 주었다. 허니문 시절의 이야기다.


한 해를 넘기고 사무실 이전을 하면서 화분을 집으로 가져갔다. 당연히 전보다 신경 쓰기가 어려워졌다. 딱히 해가 안 드는 집도 아닌데 그 집으로 이사 오면서 들인 화분은 전부 죽어 버려, 어느새 생장이 멈춘듯한 이 선인장이 살아남아 줄 거라는 기대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분은 물 주기를 오랜 시간 거르면 잎이 주저앉고 표면이 쪼글쪼글해지다가도, 다시 물을 받으면 어느새 떨궜던 모가지를 다시 곧추 세웠다. 그 모습이 어쩐지 예쁘지만은 않았다. 귀엽지 않아서, 화려하지 않아서, 그저 데리고 있는 게 지겨워서 차라리 죽기를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잔인하지만,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4월에 이사를 와서 버릇처럼 몇 개의 화분을 더 구입했다. 이 집은 기본이 북향이라 해가 낮 시간에만 잠깐 든다는 걸 잘 모르고 한 짓이다. 날씨가 더울 때는 그래도 부지런히 출근 때마다 창을 열고 창틀에 화분들을 올려 주었다. 하지만 해가 짧아지자 남쪽 창으로도 빛이 거의 들지 않게 되었다. 추위를 방지하기 위해 더 이상 외출 때 창을 열지도 않는다. 빛을 잘 못 받는 탓인지, 지난번 물 주기 이후 꽃기린은 이제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끝없이 잎을 피워 올리던 스노우 사파이어도 그 속도가 늦어졌다. 백도선은 구매했을 때 배송이 잘못되어 자구가 다 떨어지고 말았는데, 얼마 안가 한쪽 면에 동글동글한 자구 두 개가 생겼다. 꼭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듯 보였다. 자구는 쑥쑥자라 팔처럼 쭉 길어져, 게임 캐릭터 같은 느낌도 들고 불상 같기도 했지만 지금은 숨을 고르는 것 같다. 게발선인장은 한 번 분갈이를 해줬는데 특별히 자라는 느낌이 없었다. 물이 없으면 쳐졌다가 물을 주면 다시 곧게 선다. 따분한 녀석, 그게 어제까지 내가 게발선인장에게 가지고 있던 감상이었다.


오늘. 화분들 아래 놓인 로봇청소기에 물걸레를 달기 위해 허리를 숙이다, 문득 보았다. 게발선인장의 잎 끝에 몇 개인가 조그만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두 개는 자주색 빛이 도는 게 얼마 안 있어 꽃을 피울 것 같고, 몇 개는 아직 굵은 소금 한 톨만 하다. 나는 그제야 이 화분이 기특하다고 느꼈다. 꽃 정도는 피워줘야 시선을 주다니, 한심한 일이다. 내 시선 같은 건 상관없이 부지런히 살아 남고,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다니 참 단단한 아이로구나, 싶었다. 없이 산 집 아이가 그저 공교육만 남들하고 똑같이 받았을 뿐인데, 불평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지내다 좋은 회사에 취직해 첫 월급을 타 왔을 때처럼, 기특하고 미안했다. 아마 앞으로도 나의 정성이나 관심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부디 이번 겨울도 잘 살아남아 주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