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 17_노인에 대하여

실버타운에 자리한 헬스장에서

by 달을읊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실버타운 지하에 있다. 덕분에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보통 평일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가는데 종종 노인 분들도 헬스장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계신다. 아마 이 시설에 거주하고 계시는 분들인 모양이다. 가볍게 사이클을 돌리며 TV를 보시는 분들도 있고, 그저 탈탈탈탈 돌아가는 벨트 모양 마사지 기계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있다.


한번 평일 오후 4시 정도에 운동을 간 적이 있다. 최근에는 유산소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러닝 머신을 30분 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속도는 조금 늦출지언정 걷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그날도 헉헉거리며 러닝 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헬스장에서 러닝 머신을 뛰고 있으면 전면에 이 시설의 중정이 보인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소소하게 가꾼 나무들이 보이고, 여러 가지 포즈로 노는 어린애들의 동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 동상들을 볼 때면 늘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실버타운에 굳이 어린애들이 노는 형상의 동상을 두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까, 아니면 자기 자식들의 어렸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저 어린애들처럼 지금 이곳에서는 더 이상 무언가에 책임질 일 없이 즐거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게 만들까.


그때 한 무리의 노인 분들이 내 뒤편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신 분, 걸음을 보조하는 기구를 쓰시는 분, 옆의 요양사 분이 손을 꼭 잡고 계시는 분도 있었다. 추정컨데 아마 여기를 산책하는 것이 하루의 정해진 일과인 모양이다. 제법 많은 수의 노인 분들이 한 줄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 건물 지하에는 헬스장뿐만 아니라 수영장과 찜질방, 미용실, 그리고 식당이 있으며 건물은 중정을 두고 입 구(口) 자 모양으로 생겼으니, 그저 문 밖에 없는 거주층이나 1층 로비를 걷는 것보다 중정이 바로 보이는 지하층을 걷는 게 좀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계속 앞을 보면서 달리고 있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노인 분들께서 내 뒤로 지나가면서 나의 뛰는 모습을 제법 흥미 있게 보시는 것 같았다. 그 시간에 젊은 사람이 와서 그렇게 뛰고 있는 일은 그다지 없을 테니, 아마 그분들의 일상에 끼어든 재미있는 사건이었을 것 같다. 혹은 더 이상 자기 다리만으로는 힘이 없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분들에게 나는 그저 질투의 대상이었는지도.


노인들의 행렬이 느릿느릿 내 뒤를 지나는 동안, 나는 돌아 보지 않았다. 그들도 내게 딱히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러닝 머신 위를 달리는 중이었으니 고개를 돌리면 위험하고, 저 분들은 자신의 다리 힘만으로 바로 앞 한 발을 안전하게 딛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저 물장난하고 뛰어노는 어린애들 동상만이 우리가 각각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았을 것이다. 행렬이 다 지나간 후에는 내가 러닝 머신 위를 뛰는 텅텅텅텅 소리만 헬스장 안에 남았다. 겨울이 가까워 해는 빠르게 저물어 갔다.




* 커버 사진은 Pixaba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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