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은 어쩌다 병이 되었는가
일단 시조 한 편 읊고 간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이조년이라는 고려말 사람이 쓴 다정가(多情歌) 라는 시조다. 한자가 섞여 있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화는 배꽃이다. 요즘은 별로 볼 일이 없지만 벚꽃 비슷하게 생겼고, 다섯 장 꽃잎을 가진 작고 하얀 꽃이다. 거기에 달빛이 비치니 하얗게 부서질 것이다. 게다가 그 위로 은하수가 펼쳐진 한밤중이다. 꽃구경, 달구경, 별구경하기 좋은 봄날 밤이다.
일지춘심에서 '일지'는 번역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앞에 배꽃이 나왔으므로 아마 배 나무 가지를 의미할 것이다. 여기에 춘심, 봄 마음이 서렸으니 봄꽃 그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거기에 자규, 소쩍새가 운다. 한밤중이니 소쩍새가 울지 않고 제 모습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울음소리에 대한 언급은 없어도 소쩍새가 울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소쩍새는 봄이 온 것을 알까? 그 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아는 걸까? 어째서인가 시인은 소쩍새는 내 마음을 모른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이라이트인 문장이다.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소주 한 잔 들이켰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크- 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다정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그 사람 다정하다고 할 때 그 다정은 아닌 것 같다. 그 의미로 놓고 문장을 보면 앞뒤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앞에서 봄 밤의 고운 풍경과 애상적인 정조를 한껏 드러냈으니, 다정은 마음이 따뜻하다는 요즘의 의미보다는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감성이 충만한 상태니까 이런 환상적인 봄 밤에 잠이 올리가 없다.
시인이 짐짓 봄 밤에 잠 못 들고 감상에 취하는 것이 '병인양' 하듯, 요즘도 그렇지 않나 싶다. 가짜 감성이 판을 쳐서인가, 싸이월드 다이어리 시대를 거쳐 인스타에 이르기까지 감수성 풍부해 보이는 글들은 일괄 '갬성' 취급을 받고 있다. 그 와중에 감성 에세이는 어쩌면 그렇게 많이도 나오는지, 이상한 일이다.
최근 읽고 있는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에서는, 공감에 이르기 위해 처음 던져야 할 질문이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라는데, 여기서 마음은 감정을 의미한다. 이성은 사람들 간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도구이지만, 감정은 나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한 필수 도구다. 하지만 감성도 이성적으로 채점하는 시대니까, 봄 밤에 잠 못 드는 나의 심정을 100자 내외로 서술하여라(10점), 라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나 자신의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나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은 세상을 아직 살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 속의 세계에서는 봄 밤에 배꽃이 나뭇가지마다 피어, 그 위로 달빛과 은하수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소쩍새가 울고 있다. 이런 밤에 잠 못 드는 소년이라면 설렘 때문일지도, 노인이라면 회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감정에 살며시 내 감정을 포개는 일, 그게 공감이라고 한다. 다정도 병인양하던 고려 시대의 누군가와도 마음을 헤아려 포갤 수 있는데 요즘이라고 왜 서로 공감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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