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워치 4를 사다
얼마 전 물물교환이 성사되었다. 남자 친구에게 나의 헌 아이패드를 주고, 새 애플 워치 4를 받았다. 남자 친구가 쓰고 있던 아이패드가 정말 불쌍한 꼴이길래, 거저 주는 마음으로 애플 워치 새 버전이 나오면 사달라고 농담처럼 얘기한 거였는데 이렇게 금방 나올 줄이야.
11월 3일에 국내 출시가 되었지만 한동안 물량이 없었다. 나무 위키에 22일 이후에나 물량이 풀릴 거라는 출처 불명의 정보를 믿고, 어제 퇴근길에 판교 현대백화점에 있는 애플 리셀러샵에 전화해 보니 재고가 있다고 했다. 실버, 알루미늄, 40mm, GPS모델, 찍찍이 스트랩. 2개가 있어서 남자 친구와 동일 모델로 나란히 가지게 되었다.
애플 기기는 처음 설정에서 뭐가 뭔지 하면서 진행하면 그냥 알아서 잘 되는 것 같다. 사용법도 대부분은 간단하다. 아이폰과 동기화하는 과정에서 폰에 이미 설치된 앱이 워치용 앱이 있는 경우 자동으로 설치를 해주는 점이 편했다. 언제는 알람이 오고 언제는 안 오길래 이상하다 했는데, 폰을 쓰고 있으면 워치로는 알람이 안 온다. 시계를 보듯 팔을 들면 자동으로 화면이 켜지고, 손목에 차고 있지 않을 때만 암호를 입력한다. 생각해 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동작들이다. 사용자에게 가능한 인위적인 동작은 강요하지 않는다.
앱들은 초반에는 조금 불안정한 느낌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정보가 제대로 표시된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이콘 모양만 가지고 이게 무슨 앱인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아이콘 버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라 색이나 그림이 비슷하면 조금 헷갈린다. 앱의 다운로드와 설치는 아이폰의 워치 앱을 통해서 진행하는데, 워치 앱의 경우 순위나 카테고리 같은 게 없다. 리스트 없이 오직 검색만 가능해서 난감했다. 뭔가 쉽게 찾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나중에 검색해 봐야겠다.
애플 워치 4의 자랑거리는 사실 심전도 기능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대신 둘이서 동시에 애플 워치 4를 샀기 때문에 워키토키를 해보면서 놀 수 있었다. 앱의 구동 속도는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꽤 빠릿빠릿했다. 대부분의 앱들이 화면 크기의 한계가 있어 알림 기능에 초점을 두었고, UI 도 대체로 직관적이고 심플하다. 폰에 설정된 알람을 미러링 할 수 있어 일일이 폰을 보지 않아도 되는 점도 편하다. 카톡이나 아이메시지, 텔레그램은 기본적으로 음성으로 입력을 받아 답장을 할 수 있다. 시리도 되기 때문에 원래 아이폰에서 시리를 잘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음악의 경우 멜론과 기본 음악 앱을 통해 재생해 본 결과, 자체 스피커로는 재생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아이폰의 음악 앱이 구동이 되며 워치를 통해 음량 조절 등이 가능하다.
원래 애플 워치를 사고 싶었던 주된 이유가 나의 건강에 대해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심전도 기능까지 됐다면 좋았을 테지만, 심박수가 지속적으로 기록되어 이상 심박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일단은 만족스럽다. 또한 활동 내용이 폰에 비해 좀 더 충실하게 기록되는 점이 좋았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일어나라고 알림을 주거나, 잠시 활동을 멈추고 1분간 심호흡을 알려주는 점도 확실히 웨어러블 디바이스로서의 세심한 기능으로 느껴졌다. 수면이나 명상, 운동 보조 앱을 설치하면 조금 더 나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극히 중요한 개인 정보인 이런 '건강 데이터'가 너무 쉽게 기기간에 공유되고, iCloud 에 보관된다는 점은 걱정된다. 물론 iOS 나 Mac OS 가 비교적 다른 OS 에 비해 보안성이 좋다고 느끼지만, 원래 보안은 지키는 것보다 뚫는 방법이 더 먼저 개발되기 마련이니까. 눈에 보이는 컴퓨터 대신에 감각하고 제어하는 기계들이 점차 사물 안으로 이관되고 있다. 빅 브라더와 조응하는 '리틀 피플' 은 어쩌면 이런 IoT 세계의 센서들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소소한 데이터일지언정, 모든 빅데이터가 그렇듯 모으면 누군가 혹은 어느 기업인가의 파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워치를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꽃이 피는 모션을 배경으로 한 시계 페이스이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아름답다. 이런저런 앱을 사용해 보는 것도 지겨워 지면 모든 알람을 꺼놓고 그냥 시계만 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기왕이면 예쁠 것, 그게 숱한 논란 속에서도 애플이 잘 나가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 본문의 '리틀 피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1Q84> 에서 나온 단어 입니다.
** 오늘 커버 사진 출처는 Pixaba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