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을 읽고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언젠가 스치듯 읽었던 시인데 어젯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다. 눈물이 났다. 괜스레 서러운 날이라 이 시가 떠올랐다. 다른 분들이 이 시에 대해 포스팅한 글들을 찾아 읽다 보니, 대체로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글들이 많아 더 마음이 짠했다.
나는 엄마가 아직 살아 계시다. 하지만 죽음으로 헤어질 뻔한 적은 몇 번 있다.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유독 어렵게 살아온 엄마 인생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면 쉽게 운다.
어렸을 때 엄마를 떠올려 보면 웃는 일도 다정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어린애처럼 세상 억울한 일 일러바치고 엉엉 우는, 분명 나는 실제로 엄마에게 응석 부리고 위로받은 적이 있었을 테지만, 딱히 마음에 남는 기억은 없다. 딱히 냉대했던 건 아니지만 세상 사는 일이 너무 힘들었던 고작 2, 30대의 엄마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 유독 감정의 샘이 풍부해서 사랑도 미움도 언제나 넘쳐흘러 생명력이 느껴지는 사람. 우리 엄마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대체로 그렇다. 그래도 떨어져 사는 10년 동안 서로 서운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더 다정하게 대하고 있다. 평생을 엄마 속만 썩이던 아빠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아팠을 때를 기점으로 조금은 더 착실해지셨다. 종종 두 분이 어디 놀러 갔다면서 아빠가 사진을 보내시기도 한다.
이따금 엄마는 시장에서, 혹은 연안 부두까지 나가서 살아 있는 게를 사고, 새로 한 밥을 락앤락 통에 담아 커다란 들통을 가지고 우리 집에 온다. 물론 혼자서 그런 짐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 아빠를 대동한다. 그리고 원래 말이 없는 가족답게 별 얘기도 않고 게를 뽀득뽀득 씻어, 가지고 온 들통에 담아 푹 삶아 먹는다. 커피 한 잔씩 드리고 집에 과일 한 톨 없음에 핀잔을 듣고 있으면 집안에 온통 퍼진 게 삶은 비린내도 제법 정겹다. 그렇게 두어 시간 후에는 다시 들통과 빈 락앤락 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신다.
보통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엄마는 시인의 시에서 처럼 엄마에 대한 이상일뿐이다. 그래도 가끔 사는 게 속상해서 울고 싶을 때는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가 보낸 오타 섞인 문자를 생각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냄새가 빠지지 않았던 게 삶은 냄새를 생각한다. 그러면 그냥 엄마가 내 편 같다. 그립고 살갑다.
* 커버 사진의 출처는 Pixaba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