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의해 모처럼 일찍 일어난 토요일 아침에
첫눈이 왔다.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나의 토요일 아침은 대개 빨라도 10시, 늦으면 11시 정도에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은 정수기 점검을 아침 9시에 온다고 하여 부득이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기 싫어서 비비적대고 있을 때 카톡이 왔다. 전 회사 동료인데 눈을 뚫고 아침 8시까지 작업하러 나왔는데 같이 작업할 사람이 안 온다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창문을 열어보니 어이가 없을 만큼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수기 점검이 끝나고 일찍 일어난 김에 일찌감치 운동을 하러 나섰다. 윗집의 층간소음 유발자인 어린 자매가 아빠와 함께 집 앞에서 놀고 있었다. 큰 애는 이미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커다란 눈 뭉치 하나를 완성했고, 아이 아빠는 두 개의 썰매 끈을 손에 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을 우산으로 가리며 조심조심 걷다 보니 이미 완성된 형태의 눈사람 하나가 머리에 뿔까지 달고 서 있었다. 눈이 오는 날은 아이들이 부지런해지는 모양이다.
나도 눈을 좋아한다. 보통 농담 삼아 하는 말로 눈이 온다고 좋아하는 이는 애와 개뿐이라고 했는데, 나는 애가 아니니 개인가... 하고 생각해 봤더랬다. 하지만 눈 오는 날 어딜 나갈 필요가 없다면 큰 유리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커피, 또는 핫초코 같은 것을 홀짝이는 건 누구나 다 좋아할 것 같다. 교통 체증이나 세차, 눈길에 미끄러지는 걱정 같은 건 잠시 놓아 버리고 말이다.
눈 오는 날은 고요하다. 마치 눈이 소음을 흡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고요함 사이사이로 무언가 설렘을 닮은 것이 느껴진다. 철원 같은 데서 군 생활을 했던 사람한테는 이런 얘기를 해봐야 욕만 먹지만, 나는 좀 더 자주 눈이 왔으면 좋겠다. 눈이 조금 쌓인 위로 뽀득뽀득한 감촉을 느끼며 걷는 게 재밌다. 눈 온다는 핑계로 어묵을 먹거나 라면 같은 걸 먹으며 한 잔 하는 것이 좋다. 눈 오는 날의 고요함을 벗 삼아 노래도 틀지 않고 책을 읽는 것도 행복하다. 물론 오늘 출근을 했다면 그런 여유는 못 누렸겠지만,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혼자 두근거렸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