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나를 자각하기 위한 시도들
분주한 주말을 보내다 늦은 저녁에 <알쓸신잡> 동부산 편을 보았다. 작가 중 호텔방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와 관련해 김영하 작가님이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일상 생활의 공간에는 상처가 묻어 있으나, 호텔방은 일상을 끊고 오로지 나에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과연, 납득가는 이유다.
요즘 나 자신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 모두 여행을 많이 간다. 책 중에도 나를 찾아 무작정 떠난 몇 백일의 세계여행에 대한 것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런 카피를 보면 여행의 이유를 차라리 놀러가거나 쉬러,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내 발을 이끄는대로 유랑했다고 하면 좋을 것을, 나는 그 ‘나를 찾아’ 떠난다는 게 어쩐지 불편했다. 나는 항상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만 나다울 수 있다면 이직이든 공부든 새로운 생활습관을 만드는 것이든, 일상을 나답게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장기적으로 행복한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런 훌쩍 떠나보는 삶을 살 용기가 없는 이의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한번씩 회사에서 아침마다 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그때 명상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해야할 일도, 해왔던 일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온전히 현재에 머물러 지금 이 순간, 온전한 나를 만나기 위해 잠시 과거와 미래를 끊는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위에서 언급한 호텔방에 들어온 작가의 기분이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않다. 이내 집중이 흐트러지고 무언가 잡다한 과거의 회상과 미래의 걱정거리, 희망과 욕망이 둥실 둥실 머릿 속을 채운다. 아마도 그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약점이겠지. 그래도 한 번씩 그렇게 암막 커튼을 한 번에 촥 열어 젖히듯, 갑자기 현재의 나 자신을 열어 젖혀 보이는 그 말이 도움이 된다. 내가 일상에 매몰된 존재라는 자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만날 수 있다.
명상이나 80일간의 세계일주, 혹은 낯선 호텔방에 들어서기와 같은 행위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나로 살아보는 경험을 할수 없는 인간은 참 나약하다. 인간 외의 동물은 이런 의지적 노력없이 현재를 사는 것만 같은데, 우리만 평행우주에 흩뿌려진 정신세계를 갖고 사는 건지. 하지만 그런 점이 이른바 종특이랄지, 재밌는 점이다. 평소에는 이런 평행우주에 살다 가끔씩 다른 우주와의 통신을 끊어볼 일이다. 원래부터 여기에 있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그다지도 고독하고 약한 그와 차 한잔 나눠보면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