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26_여행의 시작

죽음에 임박하여 만날 풍경

by 달을읊다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어느 경계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꽃이 만발한 동산을 오르고 있었더니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섭게 쫓아냈다던가, 동자승들이 피안의 세계로 안내하려는데 뒤에서 누가 너무 구슬프게 울고 있어 차마 가지 못했다던가 그런 이야기다.


솔직히 사후세계는 믿지 않는다. 사는 동안 이렇게 시달려 놓고 또, 라는 한숨이 나기도 한다. 기껏 살아생전에 남에게 선한 일을 행하고 중생을 구원했어도 결국 도달하는 곳이 청결하고 시원하며 온갖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이라면, 가능한 살아서 그런 풍경으로 여행갈 방법을 궁리하겠다. 물론 살아 있는 동안 한 뼘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남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일보다는 그 반대를 택하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죽을 때 볼 어떤 장면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다음의 셋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첫 번째는 오후 3시 정도의 햇살이 은은하게 빛나는 초록 보리밭의 끝없는 물결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왔던 것 같은 그런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어렴풋이 새벽이 걷히려고 하는 초원이다. 나는 맨발로 이슬 내린 초원 위를 밟는다. 추운 곳의 풍경이지만 나는 춥지 않다. 마지막은 황금빛 노을이 일렁이는 거대한 강이다. 바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막막한 느낌은 없다. 나는 조각배를 타고 조금씩 노를 저어 나간다. 팔의 힘이나 물결을 이용해 나아간다기보다는, 노을의 저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아마도 세 가지 풍경의 끝에는 내가 본 적은 없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런 풍경 속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부디 무사히 그곳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런 여행을 살아 있는 동안에 하면 좋겠지만, 언젠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의식이 다하는 순간 이 풍경을 떠올리길 기원하며 글로 남겨 본다.




* 커버 사진 출처는 Pixaba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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