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창의력

by 달을읊다

꿈에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의 배경에서 창밖을 날아가는 2차원적 형태의 UFO를 보았다. 흡사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같은 느낌이었다. 그 직후에는 꿈속에서 내 할아버지로 가정된 어떤 레지스 탕트적인 인물 사후에 그의 문서를 지키기 위한 지하 조직에 속해 있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표주박을 닮은 어떤 과일과 바나나를 따고 있는 중 잠에서 깼다.


최근 신혼집 계약이 끝났다. 그러고 나면 원래 계획대로는 도배와 장판 정도나 하고 대출만 신경 쓸 생각이었는데, 인테리어를 하게 생겼다. 지금 사는 집을 더 수월하게 내놓기 위해 작년에 산 세탁기와 냉장고를 저렴한 가격에 넘기기로 했더니만 혼수에 가전이 상당한 규모로 포함되어 버렸다. 덕분에 다른 결혼하는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소비의 늪에 빠져 돈 개념이 없어지는 중이다. 마이너스 통장도 다시 개설했겠다 점점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다.


7개 업체에 인테리어 상담 또는 견적 요청을 하는 동안, 점점 하고 싶은 인테리어의 성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당연히 바닥은 강마루 시공, 주방의 공간은 좁으므로 그냥 일반적인 -자 형태의 상/하부장이 있는 싱크대 구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바닥은 장판 기준으로 바뀌었고 주방은 상부장 없이 ㄱ자 구조에 맞은편 벽면에는 하부장만 있는 -자 구조의 수납장이 더해진 구성, 그리고 페인트가 칠해진 신발장은 리폼이 불가하므로 교체하는 식으로 기본 원칙이 바뀌고 있다. 그뿐이랴, TV 가 75인치로 정해지면서 생각과 달리 훨씬 길쭉하면서도 하중이 큰 장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고 소파는 우연히 들른 어떤 가구 업체의 물건 중에서 고르기로 낙점되었다. 자꾸 눈이 높아지기만 할 것 같아 예산을 잡아 보는데, 과연 내 마음이 이것으로 만족할지 의심스럽다.


평소 조금은 비현실적인 가상화 영역의 업무만 보다가, 갑작스레 이미지 중심의 세계와 씨름을 하다 보니 그런 UFO의 꿈도 꾸고 그러나 보다. 그 이미지는 내가 실제로 본 적은 없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의 장면들과 닮았다.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 무의식에서 최근에 본 가장 충격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를 참고 삼아 꿈으로 밀어 올려놓은 모양이다. 자, 인테리어를 할 때 이런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그런 의미인 셈이다. 어디다 그 2차원적이고 혼란스러운 기하학적 이미지와 바나나를 겸한 이미지를 내 집에 들여놓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머릿 속에서 밀어내기는 어렵다. 그런 것을 실제 세계와 잘 연결하는 것이 창의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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