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시장 골목 초입에 커다랗게 자리한 곳이다. 약사가 적어도 세 명 이상은 상주하고 있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제법 큰 약국이다. 혹시나 해서 지도 앱에서 찾아보니 여전히 같은 자리에 같은 이름을 달고 영업 중이다. 그렇다면 거의 3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네모난 하얀 종이에 약제를 넣고 착착 세모난 모양으로 접어 봉투에 넣어주던 때부터 우리 가족은 꽤 오래 그 약국의 단골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 그 당시 부모님의 연세는 지금 나보다도 어렸다. 다른 집들처럼 우리 집에서도 가정 폭력이 있었다. 나나 오빠가 맞는 일은 없었지만, 종종 엄마가 맞곤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다른 날보다 정도가 심했다. 단칸방 장판에 빨간 피가 고일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엄마는 자신이 흘린 피를 스스로 닦아 냈어야 했을 테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눈 주위에 피멍이 들고 심하게 부었다. 엄마는 내게 약국에 가서 안대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시장 초입에 있던 단골 약국에 갔다. 여자 약사 분이 있는 매대로 갔다. 나는 안대랑 엄마가 부탁한 어떤 약을 달라고 했다. 약사는 진열장에서 뒤적뒤적 부탁한 물건을 찾았다. 그리고 계산을 하면서 물었다.
"엄마 아빠가 싸웠나 보구나?"
난처하고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질문을 하는 젊은 약사의 표정은 장난스러웠다. 악의는 없었을게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고 얼른 약국을 빠져나왔다. 약사가 그 대답에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안대를 건넸다. 엄마는 그 안대로 피멍 든 눈을 가렸다. 우리는 그날도 울었던가, 지금 떠올리기에는 너무 먼 옛날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