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수동 안전가옥에서 텀블벅과 함께한 '최애전'에 다녀왔다. 텀블벅에서 인기 있는 창작자들을 모셔 놓고 오프라인에서 판매를 진행하는 행사라고나 할까. 종종 텀블벅에서 펀딩을 하고 있기도 하고, 지난번에 다녀온 '안전가옥'이라는 공간 자체도 마음에 들어 찾게 되었다. 그리고 방문할 때의 생각과는 달리 온갖 것들을 사들이고야 말았는데, 그중 하나가 보드 게임인 '시카고 그랜드 호텔 연쇄 살인 사건'이다. 이전에 '셜록 홈스 : 여섯 개의 사건 파일' 게임은 텀블벅에서 펀딩 하여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와 이 게임을 어제 두 판, 오늘 두 판 해보았다. 결과는 4전 4패였다. 이 게임은 2인 게임으로, 한 명이 형사, 다른 한 명이 범인의 덱을 가지고 승부하는 게임이다. 기본적으로는 전략 게임이고, 필연적으로 눈치 게임이다. 카드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는 편이라, 손에 들고 있는 카드의 수를 적정하게 유지하고 있다면 어떤 카드를 내더라도 상대가 이를 제압할 수 있는 카드를 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상대가 낼 카드의 확률을 계산해서 신중하게 내가 낼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게임을 네 판 연속이나 지고 나니, 이건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싶어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사실 나는 지는 거나 뭘 못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이런 노는 것도 지게 되면 정말로 기분이 상해 버린다. 그런 모습이 애 같기도 하고, 모든 게임을 이길 수도 없기 때문에 마치 이런 승부에 관심이 없는 척한다. 사실 지는 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은 한두 번 지는 거 정도는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넘기거나, 적당한 승부욕을 발휘하여 더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오늘도 연달아지고 나서 꿍한 마음으로 고구마를 다듬다가, 어쩌면 열등감이 심해서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열등감은 자존감과 연결된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지야 않았겠지만, 나는 무척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열세 살 때부터 우울증에 걸려 자살 충동을 심하게 겪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제일 먼저 나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싶어 진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회사에든 다른 사람에게든) 쓸모가 있을 때뿐인 것만 같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가 유능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이 견디기 어렵다. 지는 것은, 혹은 무언가 못하는 것을 들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해도 된다는 허가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고작해야 보드 게임 한 판 정도로 그런 기분 안 느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최근에 요시타케 신스케의 '결국 못하고 끝난 일'을 읽었다. 유연체조부터 긍정적 사고까지, 작가가 못한 일의 범주는 다양하고 아주 많다. 그 책을 읽으며 어쩐지 위안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자 내가 잘하는지 의심스러운 일들을 늘어놓으며 자기 자신의 강점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차라리 하루에 하나씩 '나는 OOO를 못해, 그래도 괜찮아!(혹은 그래서 뭐?)'라고 말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게 자존감 회복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본다. 나는 보드 게임을 못해,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다음에는 꼭 이기고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