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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Dec 13. 2016

움직이다

채산역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지하철역이었다. 여러 해 전 역의 신설을 둘러싸고 땅을 가진 자들과 상식을 가진 이들 사이에 큰 다툼이 있었으나, 결국 역은 어느 위치에 지어지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교통은 불편해졌으나 채산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했다.


        나무는 보통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나, 평생에 걸쳐 관찰한다면 사실 웬만한 동물보다 더 많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동화에 나오는 바오밥나무처럼 수명이 긴 나무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채산역이 생긴 직후부터 역 앞에 터를 잡고 앉은 노숙인 김 씨는 확연히 인간이 식물보다 움직임이 적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앉은뱅이라고 했다. 아무도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본 일이 없으며,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채산역은 이용객이 뜸하여 서서 가는 승객이 거의 없었으며,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전화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수목원처럼 정적인 광경이다.


        김 씨는 구걸을 하지 않았으며, 대개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약간은 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 유사하게 행동이 부자유한 걸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음악을 틀거나, 심지어 그 앞에 작은 돈통을 갖다 놓는 일조차 김 씨는 하지 않았다.


        그가 그 자리로 출퇴근을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조차 없었다. 소수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가 행여나 굶어 죽거나 하지나 않을까 우려되어 지폐를 두어 장 쥐어주거나 먹을 것을 주거나 했으며, 김 씨는 그때서야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안위에 매우 걱정이 된 누군가 그를 도우려 하며 이름을 물었을 때, 그는 놀랍게도 품 속에서 오랜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형식이 바뀌기 전의 매우 오래된 주민등록증이었는데, 대부분의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고 성씨가 김씨였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채산역에도 다시 겨울이 왔다. 지어진 지 여러 해 되었음에도 채산역에서는 여전히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나는 건축자재의 역한 냄새가 났다. 주로 지하철역에 터를 잡은 노숙인들 역시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탓에 따듯한 역 내에서 쫓겨났다. 김씨는 날씨가 영하를 기록할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늘 벽을 등지고 있었고, 사시사철 입는 곤색 자켓과 회색 털모자만이 추위를 막아주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아침 영수는 출근길에 익숙지 않은 광경을 보았다. 김씨의 옷차림이 가벼워져 있었다. 평소 딱히 가난한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으나, 영수는 행여나 김씨가 얼어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걸음을 재촉해 가까이 다가갔다.


        김씨의 옆에 무언가 커다란 짐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른 노숙인이 누워있는 것이었는데, 김씨가 자켓을 벗어 그를 덮어준 위에 눈이 쌓여 잘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숨을 관찰하거나 맥박을 잰 것도 아니었지만 영수는 그 노숙인이 이미 죽었음을 어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출근 시간이 늦었다. 김씨도 노숙인과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없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그가 살아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영수는 잰걸음으로 다시 인파에 합류하여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객차 내에서는 행상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셀카봉을 팔았으며, 그 누구도 구매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지역 뉴스에서는 두 명의 노숙인의 시신이 수습되었다는 보도를 짧게 다루었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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