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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Dec 04. 2016

버스

1


  "날씨도 더운데 저희 동물원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자님."

  꽃사슴 동물원의 홍보실 직원인 최순자 주임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초여름이라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운 건 아니었지만, 동물원이 야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해있다 보니 입구에 이르러서는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들은 이 날씨에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큰 동물원에서는 과일을 넣은 얼음을 얼려 주기도 하고 냉방설비를 해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예산이 부족하여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동물원 직원들이 늘 정중하게 나를 맞아주는 최 주임과 같다면, 사랑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작은 동물원이지만, 뜻하지 않게 시 측에서 지원을 얻어 새로운 동물을 들여오게 되었다고 한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기에, 종종 할머니와 함께 동물원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공개 우리가 정비되려면 시간이 걸려서, 지금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사진 찍으러 가기 전에 한 바퀴 도실래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종이컵에 얼음이 몇 덩이 띄워진 믹스 커피를 마저 비우고 최 주임을 따라나섰다.

  동물원의 마스코트인 꽃사슴사를 지나면 원숭이사가 있었고,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작을 비롯한 조류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공작의 상징인 화려한 꼬리깃이 군데군데 빠진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어린 학생들이 자꾸 조그만 돌멩이를 던져 스트레스를 받아서라는 듯했는데, 조만간 보다 조밀한 철조망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있는 시원한 지역에는 곰사가 있었다. 원래는 덩치가 작은 말레이곰 두 마리가 지내고 있었으나, 병으로 사랑이가 폐사하는 바람에 우정이 혼자 남았다고 했다. 글씨를 잘 쓰는 직원이 손으로 쓴 안내판에도 같은 내용이 그려져 있었다.

  곰사 안쪽의 벽에 그려져 있는, 아마도 역시 직원이 그렸을 다정한 곰 두 마리의 그림이 그래서 더 서글퍼 보였다. 나는 올라오는 길에 갈증을 참지 못하고 자판기에서 뽑은 탄산음료를 마저 들이키며, 상체를 기울여 우정이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다.

  꽤나 넓게 마련된 곰사에서 우정이는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정확히는 계속해서 벽의 한 귀퉁이와 다른 쪽 끝을 오고 가고 있었다. 일종의 정신병인 정형행동이었다.

  "우정이가 많이 슬픈가 보네요."

  최 주임도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었고, 그만 새 동물을 취재하러 가보자고 했다.



2


  사실 나는 오랜만에 동물원에 간 게 아니었다. 사랑이가 들어오기 바로 얼마 전에, 벚꽃이 많이 핀 봄날, 꽃사슴 동물원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때 최 주임은 휴가를 간 상태였으니 동물원에는 딱히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에도 우정이는 같은 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곰의 표정을 잘 모르지만, 사랑이 역시 우울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동물원 입구의 작은 카페에서 파는 커피에 시럽을 잔뜩 넣어 마시며 동물원을 나섰다.

  나는 자주라고 할 것은 없지만 아주 가끔, 왠지 모르게 동물원이 생각나면 방문하곤 했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갔던 그 날에도 동물원을 찾고 싶었다.

  동물원을 가는 길은 두세 가지가 있었고, 하교하는 길에는 음침한 달동네를 지나야 했다. 굳게 걸어 잠긴 부실하고 오래된 나무 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지기만 하면 크게 울어대는 잡종 개와, 술냄새와 바다 냄새를 풍기며 씩씩대는 중년 남자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이는 여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퀴퀴하고 습한 곰팡이 냄새. 그곳에서 산다면 잘은 모르지만 방문자라면 왠지 모르게 눈치채게 되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그 가지 친 골목길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짖지 않는 한 마리 개가 있었다. 아마도 십수 년쯤 전에 누군가 지었을, 금방이라도 무너질 집의 이층 옥상에 그 개가 있었다. 옥상은 매우 좁았고, 아마도 개가 어릴 때 주인이 어딘가에서 얻어왔을 조그만 개집은 이제 들어가기엔 벅차 보였다.

  그리고 녹슨 사슬과 낡은 목줄이 있었다. 처진 귀에 검은 주둥이를 한 갈색의 늙은 개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내가 동물원을 찾기 위해 교복을 입고 그곳을 지나던 그 날에도 개는 좁은 옥상을 배회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길을 간 것은 처음이 아니었으나, 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정신병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그때에도 개가 정상이 아니라는 어떤 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등에는 무거운 책가방이 있었고, 순간 저 개의 목줄을 풀어주자는 강렬한 욕망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저 집에 사람만 없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집의 비좁은 안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들리는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인 듯했다. 매우 재미있어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텔레비전 소리 외에 달리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내게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한참 개를 응시하다 발걸음을 돌려 그냥 집으로 향했다.



3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야간 자율학습, 소위 야자를 시작하면서 더는 동물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나는 다른 모든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밤 열한 시가 되어야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내리막길인 하굣길을 지나 교문을 나서면, 한적한 도로로 으레 버스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는 시간이었다. 버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막 하교한 다른 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버스와의 거리는 꽤 가까웠고, 때로는 내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기도 했다. 버스 안의 학생들은 친구와 한두 마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입을 다문 채로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나 역시 버스에 타서는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등굣길에는 주로 앉아 있었다.

  일 년의 시간에 따라 해가 뜨는 시간은 달라진다. 때로는 버스를 타는 시간에 맞춰, 비린내 나고 낡은 항구의 바다에 가까운 도로를 지나는 타이밍에 해가 뜰 때가 있었다. 버스와 태양의 거리는 매우 멀었고, 수평선에 걸친 태양은 거대해 보였다. 나는 삼 년 내내 등굣길에서 언제나 같은 자리, 태양과 보다 가까운 자리에 앉았고, 그 버스의 운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혹은 버스가 태양에 이르는 순간까지라도 족했다. 언젠가는 태양이 이 버스를 태워버리겠지.

  나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고, 대입 시험을 치른 뒤 집에서 먼 어느 대학교에 진학했다. 공부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일 학년을 마치고 깊은 산속의 부대로 군 복무를 다녀왔으며, 복학한 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방학 때에는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사를 했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선배의 소개로 지역의 조그만 지방 일간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지역에 대해 기사를 썼으며, 여기저기로 취재를 나갔고, 나의 조그만 월세방과 회사를 오갔다. 때로 나는 회식 자리에서 조그만 소주잔에 술을 조금 마셨고, 낡은 흑색 정장을 입고 경조사를 갔으며, 어느 날 퇴근길의 버스에 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나는 벨을 눌렀고, 버스는 멈췄다. 나만을 내려보낸 뒤 버스는 출발했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거리를 비췄다. 해가 일찍 져 어두운 시간이었다. 나는 태양이 순환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렇게 진 태양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내가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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