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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Dec 02. 2016

첫눈

영수가 수술을 결심한 것은 그 겨울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첫눈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겨울의 첫 눈일 뿐이었고, 심화된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여름에도 눈이 내리곤 하는 요즈음에 와서 눈이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상으로 겨울, 십이월에 내리는 첫 눈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리는 건 섭섭한 일이다. 영수는 공립 종합병원의 커피 테이블에 앉아 창밖 마천루의 숲 사이로 한없이 떨어지는 눈송이의 무리를 보며 물의 순환에 대해 생각했다. 눈이나 비로 내린 물은 언젠가는 다시 구름이 되어 올라간다. 지금 내 몸을 구성하는 수분의 일부는 분명 과거 어느 시점에서 공룡이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박테리아를 구성하는 물이었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다른 행성의 구성 요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수는 지금 그런 물의 일부가 되려 하고 있다.


        시설 동기들은 모두 수술을 받은 뒤였으므로, 영수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 마지막 차례로 수술을 받는 사람이 된다. 원칙적으로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종류의 수술이므로 (그리고 영수에게는 가족이 없었으므로) 지금까지 미룰 수 있던 것이다. 수술을 받지 않고서는 물건을 사거나 직업을 구하는 간단한 일조차 곤란해졌으므로, 영수로서는 눈 딱 감고 동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느샌가 의무 담당관이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왔고, 영수는 탈의실로 향하여 제공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서 여러가지 설명을 들었다. 깨어나면 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있을 것이고, 몸을 완전히 움직이기까지 적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이 걸릴 겁니다. 영수 씨처럼 건강한 상태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으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수술대에 누워 이동하면서 천장을 보는 느낌은 생각보다 공포스러웠다. 지금도 밖에서는 많은 눈송이가 내리고 있겠지. 이내 영수의 팔에는 마취를 위한 카테터가 연결되었고, 가스 흡입을 위한 마스크도 씌워졌다. 마취를 담당하는 의사의 두 눈의 렌즈가 수술실의 강한 조명을 받아 빛났다. 숨을 자연스럽게 쉬시고, 열까지 세세요. 하나. 둘.


        그때 하늘에서는 다른 눈과 다를 것 없는 한 눈송이가 응결되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눈송이는 높은 하늘에서 도심이 보이는 높이까지 내려와, 늦은 저녁임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유리성 건물 외벽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걷는 거리에 이르렀다.


        이 특별한 눈송이는 바닥에 닿아 마침내 물이 되었다.


        "전뇌, 전자두뇌를 이식하는 수술은 현대인의 기본 조건이자 인류를 한 단계 발전시킨 혁신적 기술입니다. 이제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영수의 의식이 약에 의해 기능을 멈춰가는 동안, 영수를 구성하는 의식 그 자체는 전기 신호를 타고 빠르게 업로드되기 시작하였다. 물이 된 눈은 여전히 눈인가? 그 해 특별할 것 없는 눈이 내리던 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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