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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Jun 30. 2022

형완의 임무(2)

무진

반신반의하며 낸 휴가는 생각보다 싱겁게 재가를 얻었다. 나 한 명쯤 없어도 이 로봇들을 운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형완은 물류센터를 나서며 생각했다. 푸르고 붉은 여명 아래로 간밤에 얕게 내린 눈에 발자국이 하나둘 찍혔다. 무진시까지는 편도로 3시간 거리였다.


“임상시험 일정은 개별적으로 진행됩니다. 세부일정은 별도로 송부드린 문서를 필히 참고하여 주시고요.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기차에서 졸음이 올 때쯤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형완은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떠올려보려 했으나 막상 입원과 관련된 내용 말고는 딱히 물어볼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기술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겠지. 평일의 무진행 기차는 한산했고, 때때로 승무원 로봇이 차량을 돌아다녔다.


의사 신체에 대해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 범주는 사지에서부터 감각 기관까지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으며, 사고로 인한 장애 발생 시 의체화에 대한 보험 상품까지 일상화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생각했다. 완전한 기계 몸을 만들고 의식을 복사해서 전자두뇌를 시뮬레이션하면 제2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사실 이는 진부한 주제였다. 두뇌를 통째로 옮기지 않는 이상은 나의 복제본이 내 행세를 할 뿐이라는 점은 자명했다. 상이군인 등을 대상으로 한 전신의 80% 이상에 걸친 의체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화를 막기에는 인류의 기술력은 역부족이었다.


“본 임상시험은 본격적인 전신 의체 산업화에 앞서 타당성을 검토하고 관련 법령의 입법 기초활동을 위해 이뤄집니다. 부분적인 의체화는 흔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직 해외 사례도 부족하고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형완은 임상시험 동의서 작성 안내를 받으며 비로소 든 의문을 의체시술과 교수인 서진에게 꺼냈다. 병원 특유의 공기가 말할 때마다 콧속을 맴돌았다.


“제 의식을 복사하고 나면 저는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일정이 9일까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좋은 질문입니다. 안내드린 9일간은 함께하는 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9일간의 검사를 거치면서 의체는 본체와 계속 상호작용을 거치게 될 겁니다. 원본과 얼마나 유사성이 높은가가 주안점이니까요. 각종 인지검사와 동작 검사 등을 함께하시게 될 겁니다.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할 거예요.”


“그렇군요. 모니터링 기간까지 끝나고 나면 의체는 어떻게 되나요? 폐기하나요?”


“정해진 바는 없지만,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나와 똑같은 나를 보는 감정은 어떨까? 왠지 불쾌감이 들 것 같다는 감정을 애써 떨쳐내며 형완은 동의서에 서명을 마쳤다.


첫날 오후는 의체 제작을 위한 바디 스캔과, 의식 다운로드를 위한 스캔이 일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스캐너 안은 형광색 푸른빛이 감돌았고, 웅웅 거리는 소리가 느릿느릿 발과 머리 사이를 오갔다.


이윽고 의식 스캔 차례가 다가오자, 형완은 좁은 부스에 들어가 뇌파 측정기처럼 생긴 헬멧을 쓰고 모니터를 쳐다보며 서진과 원격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시간은 개인에 따라 1시간에서 3시간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말을 걸거나, 보고 계신 화면에서 무작위 화상이 나올 겁니다. 소리나 영상이 재생될 수도 있고요. 소리 내어 응답을 하셔도 무방합니다. 준비되셨나요?”


“예.”


“그럼 지금부터 의식 스캔을 시작합니다.”


모니터는 형완이 모르는 어떤 남자의 화상을 띄웠다. 40대로 보이는, 수염이 거뭇거뭇한 남자가 도심 골목에서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이것이 내 기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형완은 안내받은 대로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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