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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Jul 06. 2022

형완의 임무(4)

재능 있는 형완 씨

화면은 두 시간 여 동안 계속해서 수중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었고, 때때로 서진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스캔을 마친 후 형완은 장비를 벗으며 생각했다. 좁은 부스 안에서 이상한 장비를 쓰고 몇 시간이나 버티는 것도 할 짓이 못 되는군.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할 짓이 못되죠?”


“두 번은 못하겠네요.”


형완은 근무와는 또 다른 종류의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의체는 만들어지는 중일 터였고, 오늘은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서진은 형완을 입원실로 안내했다. 임상시험을 위한 별도의 건물이 있는 것이었는지, 병동은 생각보다 사람이 뜸했다. 병동 특유의 하얀색과, 하늘색 톤의 근무복을 입은 간호사들. 때때로 가운을 걸치고 복도를 오가는 의사들.


침대에 누워 형완은 오늘 있던 일을 돌이켜보았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환경과 장비가 주는 낯선 불편함에다가, 알 수 없는 영상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들을 꺼냈다. 그런 것들이 내 의식을 스캔하는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모를 노릇이었다. 서진이라는 젊은 의사의 의중이나 임상시험의 목적도 형완에게는 수수께끼였다. 병원의 하얀 천장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형완은 저도 모르게 이른 시간 잠에 들었다.




“임상시험에 적극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례비는 입원하실 때 작성해주신 계좌로 입금해드릴 예정이고요. 혹시 또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형완은 서진과 악수를 나누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서진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인지검사나 동작 검사는 지루한 편에 가까웠고, 의체와의 소통도 제한적인 수준이어서 처음 볼 때의 신기함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앞으로 3개월 내에 제가 연락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가 임상시험 기간이라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거의 일몰이 되어서야 병원을 나섰다. 무진의 겨울 하늘은 흐렸고, 무채색의 군중 사이로 무진역을 향한 발걸음이 옮겨졌다. 형완은 역에서 저녁 식사를 간단히 때운 후 채산행 기차에 무거운 몸을 실었다. 그제야 왜인지 모를 피로감이 온몸을 감쌌다.


‘채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커다란 홀로그램 광고판이 기차를 맞았다. 채산에 도착할 무렵에는 벌써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역에서 나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길가에서 흡연하는 사람들과 배기가스 냄새. 역 주변의 노숙자들. 모두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었다. 찬바람이 점퍼 위를 매섭게 스친다.


형완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왠지 스마트폰은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창밖 풍경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차가 갈수록 뜸해지는 불빛과 늘어가는 ‘임대’ 사인. 평소 같았으면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간을 보냈을, 길가에 놓인 낡은 의자들. 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므로 걸어가야 한다.


“안녕히 가세요.”


‘안심 귀갓길. 채산경찰서’ 특별히 우범지역도 아니건만, 가로등 아래 바닥에 비춘 문구와 경찰 마스코트가 오히려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옆을 지나는 외국인들의 알 수 없는 대화를 뒤로 하고 형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왠지 모르게 옆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형완을 흘긋 쳐다보는 것 같았으나, 특별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윽고 형완은 대문에 이르러 문을 열려했다.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 넣어 열쇠를 찾으려 했으나 웬걸, 열쇠가 없었다. 다른 주머니를 열심히 뒤져보았지만 스마트폰 말고는 가진 것이 없었다.


“열쇠가 어디로 간 거야?”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형완은 멈칫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문득 무언가에 생각이 이른 형완은 몇 발짝 걸음을 옮겨 방금 지나온 쓰레기 배출장소로 향했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버려진 커다란 거울이 수중의 모습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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