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규의 수첩을 덮고...

<2025년 4월 초 · 대전병원 특실 & 박규의 집>

by 부지깽이

박력은 침대 등받이에 기대 아버지의 수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탄과 양헌, 민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윤은 오빠 옆 의자에, 정신을 되찾은 정희는 규의 손을 꼭 잡고 앉아 있었다.

윤이 건넨 물을 한 잔 마신 력이 다시 천천히 입을 뗐다.

―그날 밤 나는 리차드에게 장춘동의 전공조작 정황과 파악한 무기들을 적은 메모지를 건넸다. 리차드는 무기상을 체포해 사건의 전말을 보고했고, 전두칠에게 깨진 장춘동은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거기까지 읽은 력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아빠가 이렇게 위험한 길을 걸어 오셨다니…”

탄이 낮은 목소리로 무거운 공기를 깨트렸다.

“아버지는 무거운 짐을 늘 혼자 다 짊어지셨어.”

민주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 각오가 서려 있었다.

“이제… 우리 차례야.”


* * *


일주일이 흘렀다.

박규는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그의 곁을 정희와 윤이 번갈아 지켰다.

윤은 아빠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고, 정희는 규의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었다.

규의 손은 아직 따뜻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력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해 갔다.

덤프트럭이 덮치는 순간 아빠가 핸들을 꺾어 아들을 보호한 거란 걸 력은 알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 이렇게 빨리 회복하는 환자는 처음 봅니다.”

의사의 감탄에도 력은 웃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떤 결심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었다.


탄과 양헌, 민주는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탄은 리차드와 접선해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레인보우 키퍼와의 전쟁 준비에 머리를 맞댔다.

양헌은 만물상 지하창고에서 무기와 차량을 점검했다. 양헌은 테이블에 도면을 펼치고, 오래 전 아버지에게 배운 장비 배치를 되새겼다.

민주는 고물상 2층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덤프트럭 기사의 흔적을 모아 선을 잇고 점을 찍어갔다. 암호화된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해독하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들이 누군지 밝힐 거야… 반드시.”


* * *


그리고, 오늘.

박력은 입원한 지 8일 만에 퇴원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며칠 동안 아빠의 방에서 지냈다.

아빠가 앉던 책상에 앉아, 아빠의 수첩을 펼치고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며 노트에 빽빽하게 메모해 나갔다.


마치 밤낮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던 열혈기자처럼….

신문사에는 전화를 걸어 한달짜리 병가를 냈다.

력의 전화를 반갑게 받은 편집국장이 몸 상태를 물었다.

“몸은 어떤가?”

력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회복이 안 됐습니다. 의사는 한두 달은 더 쉬어야 한다더라고요.”

국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자는 몸이 재산이야. 이번 기회에 푹 쉬어. 아버님도 곧 깨어나실 거야. 꼭.”

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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