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하이난 거리>
다섯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이난 거리 골목을 걸었다.
린과 뚜엣이 조잘대며 앞장섰고. 그 뒤를 김 일병이 호위무사라도 된 듯 바짝 따라붙어 추임새를 넣었다.
몇 걸음 뒤, 규는 리차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립스틱 클럽 사장 쪽은?”
리차드는 짧게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는 끝났어. 하지만… 장춘동과 연결된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어.”
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입을 다문 채, 골목 어귀에 쌓인 쓰레기 더미처럼 복잡한 생각들을 곱씹었다.
리차드는 말을 이었다.
“한국군 쪽에서도 슬슬 덮으려는 분위기야. 전두칠 대령은 이번엔 별은 못 달겠지만, 귀국하면 훈장도 받고 영웅대접 받을 거야. 프레지던트 박의 신임이 아주 두텁다고 하니까.”
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린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지금은 그냥 삼켜야 할 때였다.
“…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는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 말은 무력한 체념이 아니라, 앞으로도 리차드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나야말로… 우리들은, 진실을 잊지 말자.”
리차드는 가볍게 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브라더, 이 나라엔 진짜 친구가 필요해.”
짧은 악수가 오갔다.
그 악수는 말보다 단단한 침묵 속에서 맺어진 단단한 연대의 증표였다.
그러나—그들이 웃고 떠들며 짧은 평화를 누리고 있을 무렵.
어딘가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따라 또 다른 발소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하이난 거리 끝자락, 야시장 골목의 낡은 담벼락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그 옆에 간이포장마차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며 덜컥거렸다.
그늘진 골목 안, 빛 한 줄기조차 닿지 않는 틈바구니 속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조용히 웅크려 있었다.
숨죽인 눈동자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아주 천천히, 시선을 조준하고 있었다
바로—장춘동이었다.
그는 하이난 거리의 낡은 담벼락 뒤, 버려진 전단지들이 나풀거리는 그 틈에 조용히 웅크려 있었다.
구멍 난 천막 조각이 바람결에 출렁이며 그의 얼굴을 가렸다, 드러냈다.
그 출렁임 사이로, 그는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부자연스러울 만큼 또렷했다.
어딘가 기이하고, 지나치게 깨어 있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린이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뚜엣과 나란히 웃으며 걷고 있는 린.
김 일병의 실없는 농담에 풋풋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그녀의 얼굴은 예전의 그늘이 사라진 듯 맑고 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 장춘동의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렸다.
그건 웃음이 아니었다. 씁쓸함도, 질투도, 분노도 아니었다.
살기였다.
핏발 선 그의 눈동자가 린을 향해 조용히, 하지만 노골적으로 꽂혔다.
그 눈빛엔 일말의 망설임도, 사람의 온기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린… 너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그는 마치 기도를 외듯 읊조렸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이 아닌, 멈출 수 없는 파괴의 충동이었다.
그의 숨이 가빠졌다. 핏발 선 눈동자는 린의 뒷모습을 꿰뚫듯 쫓고 있었고, 분노는 어느새 그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