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론이 현관문을 나섰을 때 쏠과 넬은 저만치 앞에서 풀숲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카론은 자신의 몸이 누워 있는 집을 돌아볼 새도 없이, 멀어지는 고양이들의 뒤를 놓칠세라 전력을 다해 뛰었다. 몸인지 영혼인지 모를 발걸음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발이 땅을 딛는 것 같으면서도 공중을 나는 듯했다. 지금 뛰고 있는 것이 육체가 아닌, 영혼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저 아래쪽에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쏠이 어느새 따라온 카론을 향해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람이나 고양이가… 헉헉… 마지막 순간이 되면… 제 목에 걸린 방울이 울려요. 고양이는 칭! 치잉~, 사람은 딸랑! 딸랑~ 헉헉… 넬의 방울은 진동하는데, 방향과 거리를 알려줘요. 거리가 멀수록… 진동이 약해요. 아까처럼요. 헉헉!”
넬도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예요. 여기서 진동이 멈췄어요. 바로 이 근처예요.”
넬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혼이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빨리 찾아서 쉼터로 데려가야 해요.”
쏠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카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스터 카론!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 저희가 먼저 찾아볼게요.”
넬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짧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곧장 흩어졌다.
쏠은 오른쪽 숲속으로, 넬은 왼편 바위 너머로 사라졌다.
쏠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고, 넬은 주위를 살피며 바위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둘이 한참을 수색해도 죽은 고양이나 고양이의 영혼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넬이 걸음을 멈추고 놀란 듯 숨을 삼켰다.
눈 앞 바위 틈새에 찢긴 살점이 엉겨 붙어 있고, 풀잎 끝엔 털 뭉치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주변 흙바닥에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보였고, 고양이의 것보다 훨씬 큰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면적이 넓고 앞부분이 깊게 팬 것으로 보아, 들개떼인 것 같았다.
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방금 전 이곳에서 벌어졌을 참혹한 광경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 쏠! 여기 좀 와봐!”
넬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넬의 외침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쏠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둘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끔찍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것도 잠시, 넬이 작게 숨을 들이쉬었고, 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풀숲을 훑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 더 넓게, 좀 더 촘촘하게 바닥을 살폈지만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강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그들 사이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카론은 언덕 가운데 서서, 말없이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도 불안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잠시 후, 쏠과 넬이 카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넬이 침울하게 말했다.
“누구든지 죽으면 대부분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데 이곳에 없다는 건…”
쏠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잔인하게 찢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친 것 같아.”
둘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을 타고 강 건너까지 도망쳤나 봐.”
“저 아래에 나룻배가 있어.”
“내려가 보자.”
둘의 대화를 듣던 카론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나룻배를 향해 비탈길을 내려갔다. 카론이 앞장서서 무릎까지 자란 풀숲을 헤쳤다.
강가엔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카론은 지체없이 밧줄을 풀고 배에 올랐다.
“어서 타! 얘들아.”
쏠과 넬이 폴짝 뛰어 배에 올라타자, 카론은 힘껏 노를 저었다.
배는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강물 위를 미끄러졌다.
노를 젓는 카론을 바라보던 쏠이 입을 열었다.
“미스터 카론, 이런 배 많이 타 봤어요?”
카론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아빠랑 캠핑을 자주 갔어. 캠핑장 옆에 강이 있었는데, 아빠가 나룻배를 빌려서 노 젓는 거랑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
카론의 머릿속에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 노 젓는 법을 가르쳐 준 아버지는, 작은 손으로 요령있게 노를 젓는 아들을 보고 말했었다.
“카론, 너는 정말 훌륭한 뱃사공이 될 거야!”
어린 카론에게 거친 물살을 가르며 노를 젓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멋진 영웅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람 말을 하는 신기한 고양이들을 태우고 노를 젓는 그의 손끝엔 아버지의 거칠었던 손바닥 감촉이 느껴지는 듯했다.
넬이 생각에 빠진 카론을 깨우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미스터 카론! 나중에 낚시 좀 가르쳐 줘요!”
쏠이 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눈치 없기는… 미스터 카론은 지금 코마 상태라고.”
넬이 입을 삐죽 내밀며 대꾸했다.
“나도 알아! 그래두… 열심히 하면 아이리스가 깨어나게 해 줄 수도 있다고 했잖아!”
카론은 둘의 순수하고 뜬금없는 아웅다웅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배는 강 건너 둔덕에 도착했다. 쏠과 넬이 재빨리 뛰어내리며 외쳤다.
“내가 왼쪽!”
“그럼 나는 오른쪽!” 둘은 방향을 나누어 수풀을 헤치기 시작했다.
카론은 조용히 배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갈대숲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영혼의 기척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일까?’
현실과 환상, 생과 사의 경계에서 헤매는 듯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길고 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 세계에 오기 전, 어떤 꿈을 꾸고 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처럼, 불안하고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오른쪽 수풀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넬! 찾았어.”
카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수풀 사이에서 쏠이 모습을 드러냈다.
쏠의 등에는 새끼 고양이의 영혼이 타고 있었다. 작은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영혼은 가느다란 발로 쏠의 등을 꼭 붙잡고 있었다. 넬이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고, 셋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말 다행이야’,
‘수고 많았어’,
‘어서 돌아가자!’
셋의 눈빛엔 말보다 따뜻한 대화가 오갔다. 그들은 다시 나룻배에 올랐고, 카론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배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강물을 가르기 시작했다.
“미스터 카론! 고마워요.”
돌아가는 나룻배 위에서 넬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카론이 없었으면, 강을 건너지 못했을 거예요.”
카론은 살짝 웃으며 말없이 노를 저었다. 나룻배가 강가에 도착했을 때, 어린 고양이가 들릴 듯 말 듯 “냐아옹~”하고 울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하늘엔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었다.
쏠이 새끼 고양이의 영혼을 다시 등에 태우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얘를 쉼터에 데려다줘야 해요.”
카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넬이 앞장섰고, 쏠이 조심조심 뒤따랐다. 카론은 맨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쉼터로 가는 숲길은 구불구불 이어졌고,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든 달빛이 숲길 위에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너른 공터 한가운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굴뚝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현관 옆에는 작은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Cafe Haven」
멋진 이탤릭체 글씨 아래 「영혼들의 마지막 쉼터」라고 작게 씌어 있었다
넬이 카페 문을 밀자, 작고 은은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운터 안쪽 주방에서 아이리스가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처음이라 정신없었지? 정말 수고했어.”
쏠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은 아늑했다.
바닥은 뜨끈뜨끈했고, 벽을 따라 놓인 둥근 바구니들엔 포근한 이불이 가지런히 덮여 있었다.
쏠은 벽난로 근처 바구니에 어린 영혼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쏠이 이불을 살짝 덮어주자 영혼은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내며 금세 잠들었다.
“휴~” 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내려왔다.
카페 안엔 고소한 냄새가 퍼져 있었다. 카운터 앞 테이블엔 카론과 넬이 앉아 있었고, 길쭉한 접시 위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넬은 앞발로 고등어 한 마리를 들고 벌써 반쯤 먹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미안~”
쏠도 냉큼 자리에 앉아 고등어를 들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래, 이 맛이야!”
쏠의 입에서 맛있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론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때, 아이리스가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자넨 영혼 상태라 배가 고프진 않겠지만…”
그녀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울 가이드를 하는 동안은 몸이 있는 것처럼 움직여야 하니, 가끔 따뜻한 차 한두 잔씩 마시는 게 좋아. 몸이 느끼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야.”
카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허브 향이 코끝을 간질였고,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찻잔 속 허브가 우러나듯, 기묘하면서도 따뜻한 이 세계가 서서히 그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쏠이 고등어 머리까지 야무지게 뜯어먹은 뒤 앞발로 뺨을 쓱 문지르자, 넬이 아이리스에게 뼈만 덩그러니 남은 접시를 자랑하듯 내밀며 말했다.
“영혼이 강 건너편으로 도망쳤거든요. 그런데 미스터 카론이 우릴 나룻배에 태우고 노를 저어줘서 찾을 수 있었어요!”
쏠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노를 정말 잘 젓더라고요. 카론이란 이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아이리스가 미소 지으며 카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따뜻한 눈빛에는 카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카론은 쑥쓰러운 듯 그녀의 시선을 피하다가 쏠과 넬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뱃삯 내야지?”
녀석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뱃삯이요?”
아이리스가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신화 속 카론은 죽은 사람에게 동전을 받고 스틱스 강을 건네줬단다. 동전이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었지. 그러니 너희도 카론에게 동전을 주렴.”
“네? 동전을요?”
녀석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 동전 있어?”
“아니… 너는?”
둘은 앞발로 서로의 배를 쿡쿡 찌르며 허둥댔다.
그 모습을 보던 카론이 꾹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호호호! 못 말리는 녀석들.”
아이리스도 기분 좋게 웃었다. 넷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카페 안에 가득 퍼졌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아이리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와 물그릇이 놓인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핫초코 분말을 그릇에 담은 뒤, 뜨거운 물을 붓고 스푼으로 천천히 저어 쏠과 넬 앞에 밀어주었다.
“고기를 먹고 나면… 따뜻한 음료가 딱이지.”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내밀어 핫초코를 살짝 핥았다.
“…음! 달콤해~” 둘은 동시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단맛이 입 안에 퍼지자 마음속까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는 카론과 자신의 찻잔에도 뜨거운 물을 부었다. 향긋한 허브 향이 카페 안에 은은히 퍼졌다.
그녀는 잔을 들어 입김을 후~ 불어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카론! 트럭에 치였을 때가 기억나니? 무슨 일로 그 길을 걷고 있었지?”
핫초코를 핥던 쏠과 넬이 귀를 쫑긋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