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치매 여인을 찾아서

by 부지깽이

소울 픽업은 병원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 아래, 도시의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뒷좌석에 앉은 넬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미스터 카론! 치매는 원래 나이 든 사람들만 걸리는 거 아니에요?”

카론은 백미러로 넬을 힐끗 보고 대답했다.

“흔히는 그렇지. 그런데 요즘은 젊은 사람도 많이 걸린다더라. 유전이나 스트레스 같은 게 원인이 된대.”

고개를 끄덕이던 넬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이리스는 몇 백 살? 아니 몇 천 살쯤 됐을 텐데… 치매 같은 건 걸리지 않겠죠?”

쏠이 바로 반박했다.

“바보야! 아이리스는 신이잖아.”

“아차! 그렇지. 히히.”

카론은 녀석들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울 픽업은 10여 분 후, 진단서에 적힌 병원에 도착했다.

“자! 어서 가서 찾아 보자.”

차에서 내린 셋은 병원 정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안내데스크를 지나 진료실 쪽으로 걸어가던 쏠이 카론에게 말했다.

“여기가 진단서에 나온 병원이죠? 여기 어딘가에 있어야 할 텐데….”

“응. 맞아! 흩어져서 찾아 보자!”

넬은 이미 복도를 뛰어다니며 여인을 찾고 있었다. 쏠도 반대편 복도를 향해 내달렸다.

“어머! 웬 고양이들이야?”

쏠과 넬을 발견한 간호사가 데스크로 뛰어가 전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비팀이죠? 진료동에 고양이 두 마리가 들어왔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외과….

카론은 진료실 벽을 통과하면서 여인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영혼은 없었다.

“여긴 아닌 것 같아.”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때 넬이 카론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영혼은 어디로 간 걸까요?”

“약국은요?”

등 뒤에서 어느새 나타난 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다! 약국!” 카론과 넬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셋은 병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뛰었다. 처방전에 적힌 약국은 병원 바로 옆 건물이었다.

약국 안엔 약을 타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그곳에도 여인의 영혼은 없었다.

셋은 힘없이 소울 픽업으로 돌아왔다.


운전대를 잡은 카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떡해야 하지? 꼭 찾아야 하는데…”

그는 눈을 감고 깊이 생각했다.

‘어디선가 놓친 단서가 있을 텐데….’

그 때였다. 넬이 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앞발로 자기 머리를 ‘톡’ 쳤다.

“아! 젖병! 싱크대 끝에 있던 젖병!”

“그래! 맞아!”

쏠과 카론이 동시에 외쳤다. 넬은 잽싸게 내비를 조작했다.

“여기서 5㎞ 떨어진 곳에 산부인과가 있어요! 거기로 가요, 미스터 카론!”

“가자, 소울 픽업!”

카론이 액셀을 꾹 밟자 엔진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소울 픽업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퇴근길 도심 한복판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산부인과 병원에 도착한 소울 픽업이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카론은 재빨리 차에서 내렸고, 쏠과 넬도 미리 열어둔 창문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저녁 시간의 병원은 한산했다. 외래진료는 이미 마감된 듯 복도엔 사람들의 발소리만 간간이 들렸고,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입원실 쪽이었다.

카론이 진료실 문을 막 통과하려고 할 때였다.

“저기… 저기 있어요!”

복도를 살피던 넬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진료실 복도 끝, 긴 의자 위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영혼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카론이 천천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카론을 바라봤다.

“이제 그만 가요. 쉼터로 데려다 줄게요.”

카론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자, 여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기는요? 내 아기… 아기는 어딨어요?”

카론은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는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어요.”

쏠과 넬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카론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얘들을 따라가면 아기를 만날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 함께 가요.”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녀가 카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론은 소울 픽업 조수석에 그녀를 태웠다. 쏠과 넬은 말없이 뒷좌석에 앉았다.

트럭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이 내려앉은 도심을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엔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여인의 영혼은 어쩐 일인지 아기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녀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숨결은 없지만, 편안한 얼굴이었다.

카론은 게이트하우스에 도착해 소울 픽업을 차고에 주차했다.

그는 조용히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여인을 살짝 흔들어 깨웠다.

“여기서부터는 숲길을 걸어가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숲길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카론은 지난번 아이리스가 준 플래시를 켰다.

그는 자신의 발 앞쪽이 아닌 발밑을 비추면서 걸었다. 뒤따라 오는 여인의 영혼이 카론의 환한 발끝을 보고 따라 걸었고, 쏠과 넬이 여인의 뒤를 에스코트했다.

쉼터가 가까워질수록 여인의 영혼은 편안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넷은 숲길을 걸어 쉼터에 도착했다.


카론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가녀린 영혼은 숲길을 걸어오느라 고단했는지 따뜻한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에 조용히 누웠다.

카론이 이불을 덮어주자, 그녀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막 긴 꿈에서 깨어난 듯 평온했다.

카론이 1층 카페로 내려왔을 때 테이블 위에는 따뜻한 차와 간식이 놓여 있었다.

카론이 자리에 앉자, 넬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리스가 찻잔을 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 덕분에 많은 남자들에게 구애를 받았단다. 두 번 결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어. 그녀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번번이 유산을 했고… 결국 이혼했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쉰 아이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그 상처는 정말 깊었어. 그러던 중에 치매 판정을 받았지. 가족도, 친구도 다 떠났고… 그녀는 스스로 아기를 낳았다고 믿게 됐어. 매일 아침 젖병을 씻고, 아기를 기다렸지.”

아이리스의 목소리에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다.

셋은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고 치매까지 걸린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그렇게 혼자 지내다가 치매가 악화돼서 결국 세상을 떠난 거야. 영혼마저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아기를 찾아 산부인과를 떠돌았던 거지.”

아이리스의 이야기가 끝나자 카페 안엔 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셋은 카페를 나와 숲길을 되짚어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쏠과 넬은 사료를 몇 번 우물거리다가 입맛이 없는지 이내 소파에 와서 앉았다.

LP 플레이어 옆에 앉은 쏠이 자신이 좋아하는 LP판을 들고 말했다.

“오늘같은 밤엔 이런 음악이 딱이지”라며 조심스럽게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렸다.

‘치익’ 하는 짧은 마찰음 뒤에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어느 여름날의 나른한 오후처럼 평화롭고, 아련한 추억처럼 슬프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선율이었다.

조 히사이시의 『원 썸머 데이(One Summer Day)』였다.

넬은 작은 몸을 잔뜩 웅크렸고, 카론도 소파에 깊숙이 기대며 눈을 감았다. 소울 픽업 속의 정적과는 다른, 조용하고 편안한 평화가 흘렀다.


다음 날 아침, 셋은 뒷문을 통해 나 있는 비밀스러운 숲길을 걸어 쉼터로 올라갔다.

밤새 내린 이슬이 풀잎에 보석처럼 맺혀 반짝였다. 숲은 맑은 공기와 함께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냈다.

쉼터는 고요했고,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이 실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카페에는 어제 그들이 데려온 그녀의 영혼이 아이리스와 마주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수정처럼 맑았고, 표정에는 어제의 혼란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를 찾으러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말에 쏠은 쑥쓰러운 듯 어색하게 웃었고, 넬은 뿌듯한 마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카론은 작게 미소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따뜻한 햇살이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마치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모두 씻어내듯, 그녀의 영혼은 더욱 투명하게 빛났다.

카론은 그녀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잠시 후, 셋은 그녀를 데리고 카페에서 나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고, 시야가 훤히 트여 있었다.

그들은 오솔길을 내려가 강가에 매어둔 펀트에 올랐다.

그녀가 펀트 가운데 앉자, 쏠과 넬은 뱃머리에 나란히 앉아 그녀를 마주 보았다.

카론이 긴 장대로 강바닥을 짚고 힘껏 밀자, 배가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윽고 펀트가 강 건너편에 닿자, 그녀는 카론에게 다가와 가벼운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쏠과 넬의 볼에도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고 배에서 내렸다.

그녀는 한 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천천히 걸어서 갈림길에 도착했다.

쏠과 넬, 카론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서렸다. 그들은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경쾌한 걸음으로 징검다리를 건너자, 셋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그녀 앞에 은빛 계단이 내려왔고, 그녀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아가는 배의 가운데 칸막이에 앉아 넬을 마주보던 쏠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넬! 어떻게 젖병을 생각해 냈어?”

“그거야 뭐… 여자들만의 특별한 직감이라고나 할까?”

넬이 으스대듯 턱을 치켜들며 말하자, 쏠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아 참, 너… 여자였지!”

그 말에 넬이 도끼눈을 뜨고 발톱을 세우자, 쏠은 깜짝 놀라 카론의 등 뒤로 숨었다.

카론은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힘껏 장대를 밀었다.

셋의 마음속에는 방금 떠나보낸 그녀의 슬픈 사연이 잔잔하게 번졌다.

그런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뱃머리에 앉아 있던 넬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오른쪽 앞발을 들고 목청을 높여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쳤다.

“무겁지만 가볍게, 슬프지만 쿨하게!”

카론과 쏠이 따라 했고, 스틱스 강은 금세 유쾌한 웃음바다가 되었다.


쉼터에 도착해 카페 문을 열자 아이리스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들이 늘 앉는 테이블 위엔 따뜻한 차와 특식이 놓여 있었다. 쏠과 넬의 접시엔 노릇노릇한 고등어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고, 카론의 자리엔 투명한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레몬밤차란다.” 아이리스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카론이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코끝에 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었다.

한 모금 마셨을 때 희미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찻잔을 내려다봤다.

레몬밤차는 그의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차였다. 왜 그 차를 좋아하셨는지 몰랐었는데 아버지의 노트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그 차는 줄리아, 즉 자신의 어머니가 즐겨 마시던 차라는 걸….

아이리스가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카론의 마음은 더없이 편안해졌다.

카론은 손에 쥔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아이리스… 얘들은 어떻게 소울 가이드가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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