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부르르! 부르르르~”
평화로운 오후의 적막을 깬 방울 소리에 눈을 뜬 셋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카론이 고개를 갸웃하며 쏠에게 물었다.
“지난번과 방울 소리가 다른데?”
베란다에서 기지개를 켜던 쏠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엔 사람이에요!”
쏠은 캣타워 위를 보고 씩~ 웃더니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같이 가!”
넬이 캣타워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둘은 마당 왼쪽 차고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녀석들의 귀여운 다툼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자아냈다.
“열어! 열어! 내가 먼저 도착했어!”
“아냐! 내가 먼저 발가락으로 터치했거든!”
녀석들의 티격태격에 차고의 오래된 경첩이 덜컥 덜컥 삐걱거렸다.
차고의 낡은 문이 활짝 열리자, 카론의 눈 앞에 독특한 자태의 짙은 청회색 픽업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의 앞부분과 반짝이는 크롬 범퍼가 눈에 띄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풍겨져 나오는 멋스러움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체의 옆면에는 흰색의 굵은 고딕체로 ‘SOUL PICK-UP’이란 글씨가 운전석 아래쪽에서 적재함 위쪽으로 멋지게 쓰여 있었다.
적재함은 덮개 없이 열려 있었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헤드라이트는 마치 길 잃은 영혼을 인도하는 등대처럼 느껴졌다. 이제 이 차는 새로운 파트너를 태우고,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듯했다.
“와! 멋진데? 클래식카 같아!”
카론의 표정에 감탄과 설렘이 떠올랐다.
“아~ 진짜! 내가 먼저 손잡이 잡았잖아!”
“아니거든! 내가 먼저 문짝 터치했다고!”
“지난번엔 네가 탔잖아! 이번엔 내 차례야!”
“지난번에도 네가 탔다니까!!”
쏠과 넬은 서로 조수석에 타려고 티격태격했다. 카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차 안은 겉모습만큼이나 심플하고 멋스러웠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복잡한 계기판 대신, 짙은 색의 가죽으로 마감된 낡은 시트와 손때 묻은 나무 재질의 운전대가 눈에 들어왔다.
속도계는 바늘이 달린 옛 시계처럼 둥근 모양이었고, 작은 내비게이션은 흑백 TV처럼 투박했지만 명료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딱 두 개의 버튼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카론은 설레는 마음으로 시트를 조정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가죽과 오래된 나무의 감촉이 낯설면서도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어서 이 차를 몰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자, 준비됐으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넬이 번개처럼 조수석에 뛰어올랐다.
“아싸! 내 자리.”
쏠은 “쯧쯧~” 투덜내며 뒷좌석에 올라타서 쿵 소리나게 문을 닫았다.
“어서 시동 걸어봐요, 미스터 카론!”
넬이 재촉했다. 카론이 키를 돌리자, 잠들어 있던 엔진이 “쿠르르릉”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좋았어!”
넬이 기다렸다는 듯 에어컨 버튼을 꾹 누르자 송풍구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유후! 이 에어컨 바람 쐬려고 싸운 거예요.”
그녀는 발톱을 세운 앞발로 머리털을 정리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카론은 운전대를 꽉 잡았다. 그의 손끝에 전해지는 낯선 감촉과 묵직한 진동이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이 차가 바로 소울 픽업이에요, 미스터 카론.”
넬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신호도 지킬 필요 없어요. 한마디로 이건 유령 전용 트럭이에요.”
쏠이 앞발로 넬의 어깨를 툭 쳤다.
“내비나 켜.”
“아차! 깜빡했네. 이거 자동으로 안 되거든요.”
넬이 버튼을 꾹 누르자, 내비게이션 화면에 어설픈 픽셀 이미지가 떠올랐다.
“목표 지점, 동북쪽 10㎞.”
쏠이 간결하게 말했다.
“어서 가요, 미스터 카론. 늦으면 놓쳐요.”
넬의 재촉에 카론은 기어를 넣고,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발밑에서 엔진이 낮게 으르렁거렸고, 차체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소울 픽업 출동!”
카론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셋을 태운 소울 픽업은 붉게 물든 저녁 햇살을 가르며, 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달렸다.
속도계가 올라갈수록 단단하고 묵직한 엔진음이 차체를 타고 흘렀다.
카론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은 채 앞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야! 이거 진짜 신기한걸. 영혼이 유령 트럭을 운전하다니….”
그는 옆에 앉은 넬을 흘깃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이걸 탈 수 있지? 살아있는 고양이들이잖아?”
넬이 어느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날리는 털을 매만지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린 그냥 고양이가 아니거든요. 아주아주 특별한 소울 가이드예요. 사람 말도 하고, 유령 트럭도 타고….”
넬의 목소리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뒷좌석에 앉은 쏠이 혀를 끌끌 찼다.
“으이구! 또 또 시작이다… 저놈의 자랑질!”
좁은 시골길은 이내 깔끔한 4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졌다.
소울 픽업은 자동차들 사이를 마치 유령처럼 통과하며 속도를 높였다. 아무도 그들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의 차는 도심의 고층 빌딩들을 지나 한적한 단독주택가로 들어섰다.
쏠이 목을 길게 빼고 내비게이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빨간 점 깜빡거려요. 거의 다 왔어요.”
넬도 시트를 세우며 진지한 얼굴로 카론을 바라봤다.
“여기서부턴 집중해요, 미스터 카론.”
카론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임무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음속에도 미묘한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카론은 들개떼에 참혹하게 찢긴 새끼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번 영혼은 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새로운 영혼을 무사히 인도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교차했다.
이윽고 내비게이션 화면 속 빨간 점이 깜빡거림을 멈췄다.
카론은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간 노란 2층집 옆에 차를 세웠다.
소울 픽업에서 내린 셋은 대문을 지나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 앞에 섰다.
문은 약간 열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 카론의 얼굴이 금세 굳었다.
거실 한복판, 차가운 바닥에 젊은 여인의 시신이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카론은 숨을 삼켰다. 뒤따라 들어온 쏠과 넬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떨궜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인의 영혼이 보이지 않았다.
카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쏠과 넬에게 물었다.
“영혼이 없는데?” 그의 목소리엔 당혹감이 배어 있었다.
“정말 그러네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쏠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리스가 말해 줬어요. 사람은 죽으면 자신의 몸 근처에서 떠나지 않는다고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한다고… 그래서 대부분 그저 멍하니 시신 옆에 앉아 있을 거라고요.”
넬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요. 지금까지 저희가 안내한 사람의 영혼은 다 시신 주변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여기엔 아무도 없네요.”
카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그때였다. 넬이 무언가 떠오른 듯 앞발로 이마를 ‘콩’ 치며 소리쳤다.
“아! 맞다… 아이리스가 그랬어요! 이런 경우가 생기면 주변을 잘 살펴보라고요! 가까운 곳에 단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쏠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기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지 몰라.”
카론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여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단정한 이마와 긴 속눈썹, 입가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날 것 같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여인의 얼굴을 살피던 카론이 고개를 들었다. 거실을 둘러보던 그의 눈이 식탁 위에서 멈췄다.
그곳엔 종이 몇 장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그는 식탁으로 다가가 그것들을 들춰봤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조용히 쏠과 넬을 불렀다.
“얘들아! 이것 좀 봐.”
그가 펼쳐 보인 것은 병원 진단서와 처방전이었다. 거기엔 이미 한참 지난 날짜와 병명이 적혀 있었다.
카론의 입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알츠하이머….”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영혼이 여기에 없었던 거야.”
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왜요?”
카론이 조용히 말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치매에 걸렸던 사람이라면… 영혼도 아마….”
쏠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겠네요.”
카론은 다시 한번 주방과 거실을 둘러봤다. 그러다 작은 무언가에 시선이 멈췄다.
싱크대 끝에 젖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뚜껑은 살짝 열려 있었다.
“… 아기?”
카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빛은 혼란스러웠다.
시신도 영혼도 없는 집에 왜 젖병이 있을까?
어쩌면 그녀의 영혼이 어딘가에 있을 아기를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넬이 다가와 젖병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말했다.
“우유 냄새가 안 나요. 한 번도 안 쓴 것 같아요. 이 집에 정말 아기가 있었던 걸까요?”
카론은 바짝 긴장한 채 진단서와 처방전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병원에 가 보자. 어쩌면 그곳에 그녀의 영혼이 머물고 있을지도 몰라.”
“좋아요!” 쏠과 넬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셋은 밖으로 뛰어나가 재빨리 소울 픽업에 올랐다.
“병원… 병원…”
조수석에 앉은 쏠이 중얼거리며 내비게이션을 켰다.
“10분 거리에 진단서에 있는 병원이 있어요.”
“가자!”
쿠르르릉!
카론이 액셀을 꾹 밟자 소울 픽업이 멈췄던 숨을 토해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