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징검다리의 비밀

by 부지깽이

“으아악!!!”

징검다리 쪽에서 들려온 끔찍한 비명이 허공을 가르는 칼날처럼 셋이 탄 펀트 위를 스쳐 지나갔고, 카론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으~!”

카론은 장대를 쥔 손이 떨리고,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충격에 펀트가 크게 흔들렸다.

쏠과 넬은 재빨리 균형을 잡았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넬은 재빨리 몸을 날려 카론의 떨리는 손을 붙잡았고, 쏠은 카론이 놓쳐 강물에 빠질 뻔한 장대를 민첩하게 낚아챘다.

“미스터 카론, 괜찮아요?”

넬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카론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떨리고 있었다.

“응, 아니… 안 괜찮아…”

가볍던 그의 평소 말투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의 영혼은 그냥… 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줄 알았는데….”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그럴 줄 알았어요. 저희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넬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강을 건넌 사람의 영혼 앞엔 징검다리가 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 다리를 못 건너고… 저렇게 어디론가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

바닥에 주저앉은 카론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아이리스에게 듣는 게 좋겠어요. 자! 어서 돌아가요.”

카론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펀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써 강 한가운데를 유유히 나아가고 있었다.

“… 그래, 가자.”

카론은 심호흡을 해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쏠이 건네준 장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손끝은 여전히 떨렸지만, 이번에는 장대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장대로 강바닥을 힘껏 밀어내자, 펀트는 조용히 물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잔잔한 물살 위로, 그들이 탄 배 안에 무거운 침묵이 함께 흘렀다.


쏠과 넬은 올 때와는 달리 자신들의 지정석, 즉 뱃머리 난간이 아닌, 중앙 칸막이 위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둘은 바닥에 엉덩이를 살짝 걸친 채, 앞발에 힘을 주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카론을 향해 뛰어들 준비가 된 것처럼, 둘의 무게중심은 온전히 카론을 향해 있었다.

녀석들의 눈빛에는 로드킬 당할 뻔했던 자신들을 구하고 코마에 빠진 카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굳건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장대를 밀면서 둘의 마음 씀씀이를 눈치챈 카론의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래서인지 녀석들의 걱정과는 달리, 카론은 장대를 놓치지 않았다. 긴 장대로 강바닥을 짚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묵묵히 물살을 밀어냈다.

그들이 탄 펀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강가에 닿자 쏠이 밧줄을 물고 잽싸게 뛰어내렸다. 뒤따라 내린 카론이 밧줄을 받아 배를 단단히 정박시켰고, 넬도 폴짝 뛰어내려 그의 곁에 섰다.

셋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카론은 멍한 눈으로 오솔길을 따라 발을 옮겼다. 늘 나란히 걷던 쏠과 넬은 그의 앞과 뒤에서 그를 호위하듯 걸었다.


쉼터에 도착하자마자 쏠이 재빨리 카페 문을 열고, 카론을 빈 테이블로 안내해 앉혔다.

넬은 곧장 주방으로 뛰어가며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리스! 아이리스!”

평소와 다른 넬의 목소리에 놀라 주방에서 나오던 아이리스는 카론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세 알아챘다. 그녀는 넬에게 돌아가 앉아 있으라고 손짓한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아이리스의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다. 쟁반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긋한 자스민차와 따뜻하게 데운 우유 두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셋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찻잔을 카론 앞으로 천천히 밀어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스민차야.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쏠과 넬 앞에는 우유가 담긴 그릇과,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츄르 두 개를 놓아 주었다.

하지만 쏠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고기맛 츄르를 본체만체했다. 그저 카론의 얼굴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넬 역시 츄르만 보면 눈을 반짝이며 호들갑을 떨던 평소와 달리, 앞발로 츄르 봉지만 만지작거렸다.


카론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손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은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징검다리에서 들려온 끔찍한 비명이 잊히지 않는 듯했다.

카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틱스 강을 건넌 영혼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단다. 고양이는 위쪽 길을 따라 올라가서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를 건너지.”

쏠과 넬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였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이 저려 왔다. 아이리스가 자스민차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시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갈림길 아래쪽, 사람의 영혼 앞에는 검고 깊은 물살이 흐르는 개울이 있단다. 그 위에는 일곱 개의 돌이 줄지어 놓인 징검다리가 있어.”

카론은 숨을 삼켰다. 떨리는 손으로 가만히 찻잔을 들어, 자스민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향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갔다.


아이리스가 말을 이었다.

“사람의 영혼은 누구든 그 징검다리를 건너야 해. 모든 돌을 다 건너면 하늘에서 내려온 계단을 올라 천국으로 가지. 하지만 어떤 영혼은 발을 디딘 돌이 꺼지며 한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된단다.”

아이리스는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카론의 눈을 바라보았다.

“소울 가이드는 강을 건너는 데까지만 영혼과 함께할 수 있어. 강을 건넌 다음은 오로지 영혼들의 몫이지. 우리는 더는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도, 두려움에 떠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도 없어.”

아이리스의 눈빛은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연민이 담겨 있었다.

카론은 아이리스의 말을 천천히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혼란스럽던 눈빛이 차츰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누가 징검다리를 끝까지 건널지, 누가 중간에서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야.”

아이리스는 자스민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카론은 문득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이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잘못이 자신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는 않을까?'

카론은 본능적인 두려움 앞에서 담대하게 징검다리를 건널 자신이 없었다.


“나를 비롯한 소울 가이드들은 여기로 오는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야. 사람이든 고양이든,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고단한 일이지. 불교에선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더군. 나는 그 고단한 삶을 끝내고 저세상으로 향하는 영혼이 여기, 이 쉼터에서 단 하룻밤이라도 편히 쉬고 가기를 바랄 뿐이야.”

아이리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말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길을 떠날 때, 외롭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소울 가이드의 본분이란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카론의 가슴을 울렸다.

카론은 고개를 들어 쏠과 넬을 바라봤다. 둘의 작은 어깨에 올려진 사명감이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리스의 말이 끝나자 카페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카론은 천천히 눈을 들어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네. 이해했어요.”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은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이리스는 다정한 눈빛으로 셋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집에 가서 푹 쉬렴.”


자리에서 일어난 셋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넬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차! 내 츄르!”

셋이 뒤를 돌아보니 아이리스가 츄르 두 개를 주머니에 슬쩍 넣고 있었다.

짓궂은 장난을 치려다 들킨 소녀처럼 뻘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아냐, 아냐! 다음에 주려고 챙기려던 거야.”

그녀의 군색한 변명에 모두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넬이 냉큼 뛰어가 아이리스의 손에서 츄르를 낚아채 와서 카론의 바지 주머니에 쏙 넣으며 말했다.

“이따 집에 가서 줘요. 가는 길에 흘리면 안 돼요!”


셋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쉼터를 나섰다.

쏠과 넬이 앞장섰고, 카론은 둘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숲속에 들어서자 넬이 숨을 들이마시며 소리쳤다.

“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집으로 내려가는 숲길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았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숲속을 빠져나오자, 그들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론이 현관문을 열자 넬이 재빨리 뛰어 들어가면서 투덜거렸다.

“아이구!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쏠은 천천히 카론을 따라 들어와 사료 그릇으로 향했다.

“미스터 카론! 츄르 좀 짜 주세요. 빨리요~”

밥그릇 앞에 앉아 사료를 씹던 넬이 카론을 향해 재촉했다.

카론은 주방에서 가위를 가져와 주머니에서 꺼낸 츄르 윗부분을 자른 뒤 사료 위에 짜 주었다.

쏠은 츄르를 먼저 핥은 다음 사료를 씹었고, 넬은 두 가지를 한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녀석들의 꼬리가 느낌표처럼 바짝 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짓던 카론은 주방으로 돌아와 커피포트 전원을 켰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물이 보글보글 끓자, 카론은 선반에서 커피 알갱이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머그컵에 커피 세 스푼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자 진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그는 소파에 앉아 LP 플레이어에 바늘을 올렸다. 바늘이 판에 닿자, 이루마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카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징검다리에서 들렸던 외마디 비명과, 아이리스가 들려준 ‘징검다리의 비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휴~”

긴 한숨을 내쉬고 눈을 떴을 때 쏠은 베란다에 웅크려 햇볕을 쬐고 있었고, 넬은 캣타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넬의 가르릉거리는 숨소리가 음악처럼 평화롭게 들려왔다.

카론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다시 눈을 감았다.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고, 그렇게 평화롭고 달콤한 오후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딸랑! 딸랑~”

“부르르! 부르르르~”

갑작스러운 방울 소리에 셋은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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