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카론은 잠에서 깨자마자 ‘집사 모드’에 돌입했다.
먼저 쏠과 넬의 화장실을 치우고,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깨끗이 씻어 키친타월로 물기 한 점 없이 닦은 뒤 바삭바삭한 사료와 시원한 물을 가득 채워줬다.
녀석들도 바구니에서 기어나와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쏠은 ‘평생 이쪽 볼은 안 닦겠다’던 어제의 다짐을 금세 잊고 앞발로 쓱쓱싹싹 세수를 마쳤고, 넬은 발톱을 세워 머리를 빗어 넘기면서 우아하게 기지개를 켰다.
녀석들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부터 마당을 몇 바퀴 뛰더니 이내 거실로 돌아와 사료를 오물거리고 시원한 물을 마셨다. 카론은 믹스커피를 타서 식탁에 앉아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홀짝였다.
식사를 마친 쏠과 넬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배를 두드리며 소곤소곤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넬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갑자기 터진 비명에 깜짝 놀라서 달려온 카론이 물었다.
“뭐야, 응? 왜 그래?무슨 일이야?”
쏠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넬을 바라보았다.
넬이 펄쩍 뛰며 외쳤다.
“특식이요, 특식! 재니를 데려오면 아이리스가 특식을 준댔잖아요!”
그제야 쏠도 ‘아차!’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아이리스… 은근히 얼렁뚱땅이라니까!”
“맞아! 지난번에도 우리 주려고 꺼냈던 츄르를 슬그머니 다시 넣다가 들켰잖아!”
쏠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넬이 갑자기 몸을 돌려 카론을 쏘아봤다.
“미스터 카론! 혹시 아이리스와 한패 아니에요? 특식 달라고 하라고 귀띔이라도 했어야죠! 유식하면 뭐해? 쓸모가 없는데… 에이~”
넬의 엉뚱한 핀잔에 카론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자, 쏠이 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설마… 미스터 카론은 당연히 우리 편이지! 이따 쉼터에 올라가서 아이리스에게 당당하게 달라고 하자! 츄르도 한 봉지 더 달라고 하고!”
“아이구, 내 팔자야!”
눈 뜨자마자 쉴 새 없이 떠들며 ‘병 주고 약 주는’ 녀석들의 티키타카에 카론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쏠의 목에 걸린 방울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칭! 치잉~ 딸랑! 치잉~”
그 소리에 셋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건?”
쏠은 자신의 목에 걸린 방울을 쳐다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고장 난 거 아냐?”
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넬의 방울도 요란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부르르! 부르르~ 부르르르…”
“…?”
‘딸랑’ 소리와 ‘치잉’ 소리가 동시에 울리자 카론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진동의 세기로 봐선 가까운 곳인 것 같아.”
넬이 소리쳤고, 카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일단 가 보자!”
셋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카론이 차고 문을 열자, 쏠과 넬은 조용히 소울 픽업의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응시했다.
“어라? 니들 오늘은 왜 자리다툼 안 해?”
카론은 녀석들의 행동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동북쪽, 7㎞예요!”
넬이 빠르게 거리와 방향을 계산해 주소를 불러줬고, 카론은 내비게이션에 직접 입력해야 했다.
쿠르르릉… 소리와 함께 소울 픽업이 조용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룸미러로 뒷좌석을 힐끔 쳐다보던 카론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너희 오늘은 웬일로 안 싸우냐니까?”
넬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찮아서요… 거리도 가까운 것 같고…”
“럭비공도 아니고… 정말 못 말리는 녀석들이라니까!”
카론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자, 넬이 핀잔을 줬다.
“자꾸 피식거리지 좀 마요! 바람 빠진 풍선 같잖아!”
넬과는 달리 뭔가 심각해 보이는 쏠에게 카론이 물었다.
“쏠! 이런 식으로 방울이 동시에 울린 적이 종종 있었니?”
쏠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저희도 처음이에요.”
넬이 그들의 대화를 끊으며 재촉했다.
“가서 확인해 봐요. 어서요!”
그렇게 소울 픽업은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묘한 긴장감을 머금고 달렸다.
10분쯤 달렸을까? 소울 픽업이 멈춰 선 곳은 도시 끝자락 전원주택 단지의 가장 안쪽 집이었다.
낡아서 약간 삐걱대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성한 잡초로 뒤덮인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카론이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쏠과 넬도 익숙하게 베란다 창을 뛰어넘어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 바닥에는 삼십대쯤 돼 보이는 한 남자와 고양이 한 마리가 깊은 잠에 빠진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고양이의 영혼을 품에 꼭 안은 남자의 영혼이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고양이의 영혼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둘의 얼굴엔 슬픔이나 두려움 같은 어두운 그림자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
쏠과 넬이 고개를 갸웃했다.
쏠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고양이가 같은 시간에… 그것도 이렇게나 평화롭게…?”
카론도 쏠과 넬을 바라보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집사인 듯한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바쁘지 않으시면… 잠시만 여기 앉아 있다 갈 수 있을까요? 이 집에 추억이 너무 많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네요.”
그의 품에 안긴 고양이도 작은 소리로 “냐옹~”하고 울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카론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그들을 따뜻하게 감쌌다.
잠시 후, 집사는 품에 안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과는 2년 전 겨울에 가족이 됐어요. 길에서 혼자 떨고 있는 걸 데려왔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작년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남겨진 우리는 참 많이 힘들었죠.”
그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살짝 몸을 떨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3개월 전, 이 녀석마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죠. 길냥이들에게 흔한 림프종이었어요. 저 역시 고혈압 합병증으로 신부전이 심해졌고요. 이 녀석은 자기가 먼저 죽을 거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많이 두려워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떨었죠.”
그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숨을 골랐다.
“외로움을 무서워하는 아이예요. 혼자 떠나보낼 수 없었어요.”
집사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스쳤다.
“그래서 저는 녀석에게 약속했어요. ‘절대 너 혼자 가게 두지 않을게’라고요.”
그는 카론과 쏠, 넬을 번갈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후 저는 병원도 안 가고, 약도 끊었어요. 우린 낮엔 베란다에 앉아 햇볕을 쬐고, 밤엔 마당에 나가 달빛에 젖었죠. 그리고 결국, 오늘 같은 시간에 잠들었어요.”
셋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이 가족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집사가 밝은 목소리로 어색하게 흐르던 침묵을 깨트렸다.
“괜찮아요. 함께 사는 동안 우린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떠날 수 있게 됐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고양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들의 눈에는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집사의 영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이제 가요.”
카론은 무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태운 소울 픽업은 묵직한 침묵을 싣고 전원주택 단지를 빠져나왔다.
집사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뒷좌석에 앉았다. 넬은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고양이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고, 쏠은 조수석에 앉아 에어컨 바람 대신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쐤다.
카론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소울 픽업은 온 길을 되짚어 달렸다. 그들은 게이트하우스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쉼터로 향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숲길은 소나기라도 내렸는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발끝에 스치는 풀잎들도 마치 슬픔이라도 스며든 듯 축축했다.
“가이드님도… 죽은 건가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카론의 뒤를 따라 걷던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론은 잠시 망설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죽은 건 아니에요. 얼마 전 뺑소니 사고를 당해 코마에 빠졌어요.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가 제 영혼을 몸에서 빼 줬죠. 그리고 이 일을 제안했어요.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뒤에서 따라오던 쏠과 넬이 둘의 대화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카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둘은 고개를 숙인 채 축 처진 어깨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쉼터에 도착했을 때, 아이리스는 집사와 고양이의 사연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이 올라가 푹 쉬렴. 이제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단다.”
집사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고양이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냐옹~” 하고 울었다.
카론과 쏠, 넬은 아이리스에게 인사하고, 가랑비를 맞으며 숲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눅눅한 정적이 그들을 맞았다. 그것도 잠시, 아웅다웅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으앗! 넬! 거긴 내 자리잖아!”
“먼저 앉은 고양이가 임자지!”
쏠과 넬은 LP 플레이어 옆자리를 차지하려 티격태격했다.
카론은 익숙한 광경에 살짝 웃었지만, 많이 피곤한 듯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조용히 닫히자, 눈치 빠른 쏠이 앞발을 입에 가져다 댔다.
“쉿!… 미스터 카론 우울한가 봐.”
넬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툼을 멈추고, 어지럽혀진 거실을 말없이 정리한 후 각자의 바구니에 들어가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해가 저물 무렵, 방에서 나온 카론이 멍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LP 플레이어를 켰다.
바늘이 LP판에 닿는 소리와 함께 맥스 리히터의 『온 더 네이처 오브 데이라이트(On The Nature of Daylight)』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낮게 깔리는 현악기의 선율이 비극적인 슬픔과 고독을 품은 채,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다.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깬 쏠과 넬도 조용히 카론의 옆에 앉았다. 셋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음악에 잠겼다.
바늘이 LP판을 다 돌고 틱틱거리며 멈췄다. 카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은 깜깜했다. 그는 마당으로 나가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카론이 밖으로 나가자,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돌아와 낮잠까지 늘어지게 자느라 끼니를 거른 쏠과 넬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사료 그릇으로 달려갔다.
그릇엔 카론이 아침에 가득 채워 준 사료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둘은 허겁지겁 사료를 입에 가져가 오독오독 씹었다. 자기 밥그릇에 든 사료를 금세 다 먹은 넬이 그릇 바닥을 핥고 있는 쏠을 보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아차! 아이리스에게 특식 달라고 한다는 걸 또 까먹었잖아!”
쏠이 피식 웃으며 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 치매냐? 난 기억은 했는데, 오늘 같은 분위기엔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
넬이 눈을 흘기며 꼬리를 들어 쏠의 배를 찰싹 때렸다.
“아오! 그놈의 특식! 내일은 꼭 먹고 말 거야. 이틀이나 흘렀으니 이자까지 쳐서 츄르랑 통조림도 달라고 할 거야!”
쏠과 넬은 입맛을 다시며 조용히 바구니 침대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마당에 앉아 멍한 얼굴로 달을 보고 있는 카론에게 사료를 달라고 하기가 괜히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거실에는 녀석들의 ‘꼬르륵~’ 소리가 창 밖에서 들어온 '찌르르~' 풀벌레 소리와 묘한 화음을 내며 흘렀다.
그렇게 배고픈 게이트하우스의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