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굿바이! 마지막 팬

by 부지깽이

숲길을 달려 게이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쏠과 넬은 헐레벌떡 뛰어가 차고 문을 열고 카론보다 먼저 소울 픽업에 올라탔다. 이번엔 쏠이 조수석을 차지했다.

“빨리요, 미스터 카론!”

넬이 운전석 뒤 창밖으로 앞발을 흔들며 재촉했다.

카론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려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려 둘을 쳐다봤다.

“너희들, 특식 때문에 이렇게 오버하는 거 아니지?”

그 말에 쏠과 넬은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으로 카론을 바라봤다.

그 순간, 표정이 진지해진 쏠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카론! 사실은 저랑 넬은 재니의 팬이에요.”

그 말에 카론의 손이 조용히 운전대 위에 멈췄다.


쏠이 울먹거릴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난주에 그녀가 공연 중에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이 슬펐어요. 넬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니까요.”

뒷좌석에 앉은 넬이 눈을 깜빡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카론의 마음속에 재니를 향한 둘의 진심 어린 팬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넬이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앞발을 들고 소리쳤다.

“그녀의 영혼이 이대로 흩어지게 둘 수 없어요. 악마의 먹잇감이 되는 건 더더욱요! 그녀는 꼭 무지개다리를 건너 천국에 가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꼭 찾아야 해요!”

열어둔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카론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그랬구나. 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특식 때문에 신난 척했어?”

넬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우리 성격이 원래 그래요! 무겁지만 가볍게, 슬프지만 쿨하게~!”

“가볍게, 쿨하게! 정말 맘에 들단 말야.”

카론은 펀트 위에서 따라 외쳤던 넬의 캐치프레이즈를 나직이 중얼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쿠르르릉! 잠들어 있던 소울 픽업이 부드럽게 깨어났다.


“그런데… 어디 가서 재니를 찾지?”

카론이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묻자 넬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재니는 도시 번화가에서 공연을 하다가 쓰러져 죽었어요. 소울 가이드들이 도시를 다 뒤졌는데 못 찾았다는 건… 그녀가 못 다 부른 노래를 마저 부르기 위한 장소로 간 걸 거예요.”

쏠이 이어받았다. “맞아요. 예전에 그녀가 순회공연할 때 ‘마음에 쏙 드는 바닷가 마을’이 있다고 했어요. 여기서 남쪽으로 30㎞쯤 떨어진 해변. 그곳일지도 몰라요.”

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재니에 대한 진실된 팬심이 그녀의 영혼이 어디로 향했을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카론이 녀석들의 얼굴을 보고 ‘씩~’ 웃으며 액셀을 힘껏 밟았다.

“자! 그럼… 가 보자고! 렛츠 고!”

소울 픽업이 출발하자 쏠은 재빨리 에어컨을 풀가동했고, 넬은 뒷좌석에 숨겨둔 선글라스를 코에 얹었다.

살짝 커서 귀 옆까지 내려왔지만, 분위기는 완벽했다. 소울 픽업은 빛나는 태양과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기억과 음악, 그리고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4차선 도로를 바람처럼 달리던 소울 픽업은 갈림길에서 2차선 시골길로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남쪽 바닷가 마을에 들어섰고 부두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셋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빛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가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기타를 든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재니?”

쏠과 넬이 등대를 향해 달렸고, 카론도 잰걸음으로 둘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들이 등대 아래 도착했을 때, 기타를 품에 안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고양이의 영혼이 있었다.

갈기처럼 풍성한 털은 노을처럼 붉게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르웨이숲 고양이, 자유로운 영혼… 싱어송라이터 재니였다.

머리에 질끈 묶은 붉은 머리띠가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그녀의 노래는 잔잔한 슬픔을 품고 있었고, 고독한 자유가 느껴졌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오직 음악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카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멋진 걸!”


노래를 마친 재니가 “이 순간이 바로 자유야!”라고 외치고 눈을 떴다.

그녀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고, 그 뒤에 서 있는 카론을 보자 한 번 더 놀랐다. 그녀의 눈빛에는 놀람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준 이들에 대한 미묘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우린 소울 가이드예요. 쉼터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쏠이 선망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무지개다리를 못 건널 뻔했지 뭐예요. 어서 가요. 여기 미스터 카론이 우리 운전기사예요. 헤헤.” 넬이 카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덧붙였다

카론은 재니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노래도 멋지고 너도 멋진걸… 자, 가자! 내가 아주 멋진 차를 태워 줄게.”


소울 픽업 앞에 도착하자 카론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재니의 영혼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조심스레 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뒷좌석 쟁탈전’이 벌어졌다.

“내가 옆에 탈 거야!”

“아냐! 내가 더 찐팬이라고!”

쏠과 넬이 투닥대다가 결국 넬이 재니 옆에 앉는 영광을 안았다.

쏠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넬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이내 쿨하게 양보했다.

쏠은 입을 삐죽거리며 조수석에 앉았다.

“아이구! 정말 못 말리겠네…”

녀석들의 예측불가 자리다툼에 카론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게이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 쏠과 넬은 재니에게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언제부터 노래 불렀어요?”

“제일 좋아하는 곡은요?”

“무대에서 실수한 적 있어요?”

재니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유쾌하게 대답했다.

“어릴 땐 노래보다 달리기를 더 좋아했어.”

“실수한 적 많지…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야.”

녀석들은 재니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쏠은 조수석 글로브박스를 열고 종이와 펜을 꺼내 재니에게 내밀었다.

“재니! 사인 좀 해 주세요.”

재니는 아름다운 필체로 멋지게 사인을 해 주었다.

「쏠과 넬! 나의 마지막 팬들에게…」


사인을 건네주던 재니가 문득 생각난 듯 둘에게 질문을 던졌다.

“쏠, 넬! 너희들은 자유가 뭔지 아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녀석들은 당황했다. 넬은 갑자기 멍한 얼굴이 돼서 눈만 깜박거렸고, 쏠은 앞발로 머리만 긁적댔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카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늘 생활에 쫓겨 사느라 ‘자유’라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재니는 섣불리 답을 말해 주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넬이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쿨한 척 물었다.

“자유가… 뭔데요?”

재니가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말이지….” 그녀가 선언문이라도 낭독하듯 진지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유란 단지 또 다른 말일 뿐… 더 이상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웠지만 바위처럼 묵직했다. 카론은 그녀의 말뜻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쏠과 넬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자유는 더 이상…”을 계속 중얼거렸다.

녀석들의 행동을 보던 재니의 입가에 상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들은 게이트하우스에 소울 픽업을 주차하고 숲길을 걸어 쉼터로 올라갔다.

그들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울 가이드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잘 왔다, 재니!… 정말 다행이야.”

아이리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재니는 쏠과 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2층으로 올라가 잠시 눈을 붙였다.

쏠과 넬이 황홀한 표정으로 내려오자 아이리스는 “수고했어”라며 저녁을 차려주었다. 다른 소울 가이드 콤비들도 하나둘 돌아와 따뜻한 식사를 나눴다.

모두의 시선이 쏠과 넬에게 쏠렸다. 넬은 쏠에게서 빼앗은 종이를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재니의 사인이에요! 우리가 마지막 팬이래요. 히히…”


셋이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게이트하우스로 돌아가려고 일어섰을 때 2층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다.

재니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기타줄을 퉁기며 말했다.

“마지막 밤인데, 잠만 자긴 아까워서요….”

그녀는 카운터 앞 스툴에 앉아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까 등대 밑에서 불렀던 그 노래였다.

그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숙소로 내려갔던 소울 가이드들이 하나둘씩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카페는 재니의 마지막 콘서트장이 되었다. 재니의 노래는 밤의 공기보다 더 깊고 조용하게 쉼터를 가득 채웠고, 쉼터에 모인 영혼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떤 영혼은 살며시 눈을 감고 미소 지었고, 어떤 영혼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잠시 잊고 있던 지난 삶의 기억과 감정들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되살아나는 듯했다.


“고마웠어요. 여러분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노래를 마친 그녀는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소울 가이드 콤비들도 하나둘 숙소로 내려갔고, 카페에는 아이리스와 카론, 쏠과 넬만 남았다.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그녀는 카운터 옆 작은 방의 열쇠를 건네고 사라졌다.

작은 방 안은 바닥이 뜨끈뜨끈했고, 포근한 이불 세 개가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셋은 말없이 자리에 누웠고, 피곤이 몰려와 금세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 크르르릉, 드르렁, 크르릉… 가르릉… 카페 안에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양이 소리 같기도, 사람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다음 날 하늘은 맑았고, 스틱스 강은 고요했다. 재니는 기타를 안고 펀트 가운데 칸막이에 앉았다.

쏠과 넬은 늘 앉던 뱃머리 지정석이 아닌 재니 앞에 쪼그려 앉아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카론은 평소보다 천천히 장대를 밀었다. 바람은 잔잔했고, 물살은 느릿하게 흘렀다.

펀트가 강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갈수록, 재니의 눈이 촉촉해졌다. 쏠과 넬은 그런 재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둘의 마음속에도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차올랐다. 그렇게 자신들의 우상과 영원히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강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갈림길 위쪽에 무지개다리가 떠올랐다.

재니는 셋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배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 뛰어왔다.

뱃머리에 앉아 재니의 모습을 지켜보던 쏠과 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뭐야! 왜 돌아와?”

“뭘 두고 갔나? 돌아오면 안 되는데?”

쏠과 넬, 그리고 카론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재니가 카론에게 달려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웠어요.”

카론도 감격에 겨워 그녀를 꼬옥 안아줬다. 재니는 앞발을 들어 눈물을 훔치며 쏠과 넬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쏠과 넬, 너희도…”

그녀는 둘의 볼에 작별의 입맞춤을 남기며 말했다.

“굿바이! 내 마지막 팬들!… 그런데, 자유란?”

볼을 만지며 황홀해 하던 녀석들이 지체없이 앞발을 들고 동시에 외쳤다.

“더는 잃을 게 없다는 말일 뿐!”

재니는 감동한 얼굴로 녀석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는 무지개다리를 향해 뛰어갔다.

쏠과 넬, 카론은 재니의 마지막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재니와 작별하고,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숲길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앞서서 걷던 카론이 ‘얘들이 웬일이지?’ 싶어 돌아봤을 때 ‘피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녀석들은 아직도 멍한 얼굴이었다.

“재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넬이 꿈꾸듯 속삭였다.

쏠은 자꾸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난 이쪽 볼 평생 안 닦을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카론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지금 웃었다가는 두 녀석이 발톱을 세워 할퀼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서도 둘은 소파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카론은 그런 둘을 힐끗 보며 작게 웃고, 책장 아래 쌓인 오래된 LP판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 있었는데…?”

그의 손이 한 장의 LP판에 멈췄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찾았다!”

쏠과 넬이 고개를 돌렸다. 카론은 빛바랜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옮겼다.

재니스 조플린의 『피스 오브 마이 하트(Piece of My Heart)』가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


거친 기타 리프와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는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쉼 없이 몰아쳤고, 폭발적인 그녀의 에너지는 슬픔에 젖어 있던 공간을 순식간에 뜨겁게 달궜다.

쏠과 넬은 어깨를 들썩이며 엉덩이를 씰룩댔고, 카론은 기타 선율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재니의 마지막 노래가 살아 돌아온 듯한, 그들의 작은 콘서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헤어졌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그리움을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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