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갈수록 거실은 신나는 에너지로 가득 찼다.
쏠과 넬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이내 서로를 쫓고 쫓기며 거실을 휘저었다.
“내가 누나야!” 넬이 쏜살같이 도망가면서 외치면, 쏠은 “무슨 소리! 내가 오빠거든!” 하고 쫓아갔다.
둘은 꼬리가 엉킬 듯 아슬아슬하게 춤을 추다가도, 상대방의 꼬리를 잡으려 빙글빙글 돌았다.
“낄낄낄~”, “깔깔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녀석들의 입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카론은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였다.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놀던 쏠과 넬이 카론에게 다가왔다.
넬이 앞발로 카론의 무릎을 톡톡 건드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미스터 카론, 저희 배고파요. 간식 좀 주세요!”
쏠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사료만 챙겨주던 카론은 갑작스러운 간식 요청에 살짝 당황했다.
“간식? 간식이 있나?”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반은 물론 싱크대 밑, 다용도실까지 찾아봤지만 츄르나 통조림, 황태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카론이 고개를 저으며 “간식 같은 건 없는데…”라고 소리쳤다.
캣타워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벌이던 녀석들은 거실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넬은 꼬리를 축 늘어뜨렸고, 쏠은 빈 사료 그릇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카론의 머릿속에 문득 냉장고가 떠올랐다.
‘냉장고에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숨겨진 보물 같은 고등어 통조림 하나를 발견했다. 카론은 통조림을 꺼내 뚜껑을 열고 프라이팬에 부었다.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자, 쏠과 넬이 눈을 반짝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녀석들의 꼬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카론이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등어를 그릇에 담아 주자 녀석들은 거실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묵직하게 열 번 울렸다.
카론은 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 쏠과 넬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조용히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스틱스 강을 건네준 치매 여인이 자꾸만 떠올랐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 채, 낳지도 않은 아기를 찾아 헤매던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에 깊은 연민을 느끼던 카론은 문득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코마에 빠져 지하실 냉동 캡슐에 누워 있는 몸이 떠오르자, 과연 자신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똬리를 틀었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이대로 영원히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속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야식을 배불리 먹고 바구니 침대에 웅크린 쏠과 넬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이리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마치 눈 앞에 펼쳐진 그림처럼 마음속에 그려졌다.
자신들의 할머니 쟌과 불타는 집에서 자신들을 구하고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 그 슬픈 사연이 밤의 고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 잠이 안 와.” 넬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를 뛰어넘어 마당으로 나갔다. 은은한 달빛이 잔디 위에 나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넬은 마당 한가운데 앉아 밤하늘의 둥근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 구경’은 쏠에게는 없는, 넬만의 특별한 취미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은 매일매일 모습을 바꾸면서 말없이 위로를 건네는 친구 같았다.
넬이 늑대처럼 목을 길게 빼고 달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옆에 쏠이 조용히 다가와 앉아 있었다.
“설마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나온 건 아니지?”
넬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자 쏠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한숨처럼 말했다.
“… 엄마 아빠 보고 싶다. 할머니도….”
넬은 고개를 돌려 쏠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쏠의 눈동자에 작은 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눈가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둘은 그렇게 달빛 아래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넬이 휙 고개를 돌려 억지로 명랑한 척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네가 오빠 해!” 그러면서 앞발로 쏠의 어깨를 ‘톡’ 쳤다.
넬의 장난질에 이골이 난 쏠이 바로 맞받아쳤다.
“아냐, 생각해 보니 네가 먼저 태어난 게 맞는 것 같아. 그냥 네가 누나 해.”
쏠도 꼬리를 들어 넬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넬이 앞발을 들어 쏠의 옆구리를 ‘쿡’ 찔러 반격했다.
그리고 코맹맹이 소리로 “오빠야! 나 잡아봐라!” 속삭이고 도망갔고, 쏠이 쫓아가면서 소리쳤다.
“잡히기만 해 봐, 누나 머리털 몽땅 뽑아버릴 거야!”
잔디밭을 달려 도망치고 쫓으며 ‘달밤의 추격전’을 펼치던 쏠과 넬이 동시에 멈춰 섰다.
카론의 방 창문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넬이 작게 중얼거렸다.
“미스터 카론도 잠이 안 오나 봐.”
쏠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겠지. 오늘 강을 건널 때 보니 표정이 어둡더라. 아무래도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서 그런 걸 거야.”
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쏠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오빠야, 넌 가끔 나보다 생각이 훨씬 깊은 것 같아.”
“가끔이 아니고 항상 그렇거든!” 쏠이 콧방귀를 뀌며 받아치자 넬이 눈을 흘기며 꼬리로 쏠의 등을 툭 치고 다시 도망가며 외쳤다.
“생각 많아 좋겠다! 오빠하란 말 취소야!”
“아오 진짜! 저 변덕쟁이!”
쏠이 쫓아가면서 소리쳤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쫓고 쫓다 보니, 어느새 카론의 방 불이 꺼져 있었다.
둘은 살금살금 거실로 들어와 잠자리로 돌아갔다. 창문을 통과한 달빛이 거실에 은은하게 스며들었고, 녀석들의 바구니에는 가르릉 가르릉 평화로운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다음날 아침,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거실에 금빛 가루를 뿌렸다.
카론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그는 침대에 앉아 천장을 바라봤다.
밤새 엉킨 생각들이 아직 머릿속을 맴도는 듯했다. 머리를 흔들며 거실로 나온 카론은 익숙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다. 쏠과 넬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씻어 키친타월로 꼼꼼히 물기를 닦은 후 사료는 넉넉하게, 물은 시원하게 채워줬다.
녀석들의 아침 챙기기는 이제 카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둘을 돌보며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어쩌면 집사가 되어 고양이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이 찾은 ‘삶의 의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믹스커피 차례였다. 그는 봉지를 뜯어 커피가루를 머그컵에 털어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고소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카론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쏠과 넬이 바구니에서 기어나오며 하품을 했다.
넬이 앞발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미스터 카론, 잘 잤어요? 간밤에 늦게까지…”라고 했을 때 쏠이 잽싸게 넬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화들짝 놀란 넬이 쏠을 쏘아보며 “늦게까지 마당에서 놀았다구요…”라고 얼버무렸다.
녀석들도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오독오독 사료를 씹고 시원한 물을 할짝거렸다.
그리곤 소파에 앉아 볼록하게 나온 배를 앞발로 톡톡 두드리며 만족스러워했다.
그 순간, “따르릉! 따르르릉~”
쏠의 목에 걸린 방울이 오래된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를 냈다. 쏠과 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이리스다!”
카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방울소리가 다른데? 쏠! 네 방울이 먼저 울리고, 넬의 방울이 나중에 떨리는 거 아니었어?”
넬이 앞발의 발톱을 세워 급하게 털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아, 맞아요! 그건 영혼을 찾으러 갈 때고요, 지금처럼 쏠의 방울만 울리는 건 아이리스의 호출이에요.”
쏠도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미스터 카론, 빨리 가요.”
셋은 서둘러 뒷문을 열고 쉼터로 가는 숲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쉼터에 도착해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셋은 깜짝 놀랐다.
“우와!” 넬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카페 안은 소울 가이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운터 앞에 서 있던 아이리스가 손짓을 했고, 셋은 그녀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리스가 목청을 가다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다들 왔지? 오늘 이렇게 부른 건 합동 수색작전을 위해서야.”
그녀는 컬러 프린트된 A4 사진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이 아이를 찾아야 돼”
사진 속엔 풍성한 털과 갈기, 길고 우아한 꼬리, 그리고 깊은 아몬드형 눈을 가진 노르웨이숲 고양이가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어깨엔 기타를 메고 서 있었다.
사진 속 고양이의 눈빛은 햇빛처럼 강렬하면서도 바람처럼 자유로웠지만, 어딘가 고독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난주에 죽은 싱어송라이터 ‘재니’ 다들 알지?”
웅성거리던 카페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런데 아직 영혼을 찾지 못했어. 아마… 평소 히피처럼 떠돌던 버릇이 도진 모양이야.”
아이리스는 목소리를 낮췄다.
“죽은 후 7일 안에 못 찾으면 영혼이 흩어진다는 건 다들 알지?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육신 곁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영혼들은 루어들의 타깃이 된다는 거야. 놈들은 영혼에게 다가가 속삭여. ‘천국보다 더 좋은 안식처로 안내해 줄게. 그곳엔 고통도, 외로움도 없어’… 이런 달콤한 거짓말로 꾀어내 악마에게 바치지. 7일 안에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그 영혼은 흩어지거나, 악마의 먹잇감이 되고 말아!”
소울 가이드들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다들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목청을 높여 지시를 내렸다.
“자. 도시 전체를 샅샅이 훑어. 누구든 찾으면 바로 신호 보내고, 쉼터로 데려오면 돼. 마지막 기회야. 다들 빨리 움직이자.”
아이리스의 말이 끝나자, 소울 가이드 콤비들이 재빨리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다급했고, 눈빛은 결연했다.
“쏠, 넬! 너희도 어서 나가서 재니를 찾아!”
아이리스가 힘주어 말했다.
“카론이랑 콤비 플레이 제대로 보여줘.”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재니를 찾아 데려오면… 특식을 줄게.”
“특식이요?” 녀석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진짜죠? 우리가 꼭 찾아서 데려올게요. 약속 지키셔야 해요!”
“어서 가! 시간 없어.” 그녀가 손을 휘휘 저었다.
쏠과 넬이 카론의 등을 떠밀며 아이리스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카론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고, 그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이 카페 문을 열자, 쏠과 넬이 뛰쳐나가며 외쳤다.
“미스터 카론! 허리 업!”
“빨리요, 빨리!… 특식이 기다린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