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마지막 영혼 … 드러난 진실

by 부지깽이

또 하루가 밝았다.

게이트하우스의 아침은 평소처럼 고요했지만, 그 속에 감도는 미묘한 긴장감은 셋 모두에게 낯설지 않았다.

카론은 일찍 잠에서 깼다. 그는 쏠과 넬이 깨지 않게 발소리를 죽여 지하실로 내려가 투명한 냉동 캡슐 안에 잠든 듯 누워 있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영혼을 안내하면 코마에서 깨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조용히 거실로 올라왔다.

카론의 발소리를 들은 쏠은 바구니 침대 안에서 작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고, 잠꾸러기 넬은 기다렸다는 듯 카론에게 달려가 꼬리를 흔들었다.

“좋은 아침이에용, 미스터 카론. 게맛 츄르 좀 짜 주세용~”

넬은 어제 아이리스에게서 외상으로 얻어 온 츄르를 얼마나 먹고 싶은지 코맹맹이 소리까지 냈다.

쏠이 어이없어하며 다가왔다. 카론은 게맛 츄르 윗부분을 가위로 잘라 쏠과 넬의 사료 그릇에 짜 줬다.

“쳇! 저만 줘도 되는데…”

넬이 궁시렁거리자, 쏠은 자신의 사료 위에 올려진 츄르를 재빨리 핥고 넬을 향해 혀를 낼름 내밀었다.

카론은 녀석들의 ‘때아닌 츄르 전쟁’에 헛웃음만 흘렸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거실에는 엘튼 존의 『유어 송(Your Song)』이 울려 퍼졌다.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 위로 따뜻한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어둡고 긴 터널 끝에 마주한 환한 불빛처럼, 밝고 희망적인 노랫말이 셋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노래는 마치 지친 영혼들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듯, 따스한 위로를 건넸고, 어딘가 아련하게 스며드는 여운은 다가올 이별을 조용히 예감하는 듯했다.

점심 무렵 셋은 소파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창밖엔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지만, 셋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지막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미묘한 기대와 불안을 동반했다.

넬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마지막 영혼이에요! 이번엔 누굴까? 고양이일까, 사람일까?”

“고양이든 사람이든 영혼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어. 치매 여인이나 재니처럼 시신을 떠나면 찾기 힘들잖아. 카론의 마지막 임무가 될지도 모르는데….”쏠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카론이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상관없어. 다만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이면 좋겠어. 우리 배에서 내린 영혼이 징검다리를 못 건너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아….”

“미스터 카론은 정말 착해요!” 넬이 카론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딸랑! 딸랑~”

"부르르! 부르르르~"

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쏠의 목에 걸린 방울이 요란하게 울리고, 넬의 방울이 거세게 떨렸다.

쏠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사람이다!” 방울 소리는 언제나 셋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셋은 동시에 달려 나갔다.

카론이 재빨리 차고 문을 열고 소울 픽업의 운전석에 앉자, 넬이 조수석으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멀지 않아요. 윌로 릿지 마을 쪽이에요!”

넬의 외침에 시동을 걸려던 카론의 손이 멈칫했다.

‘윌로 릿지?’ 그 이름이 귓가를 스치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면서 사고 직전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장 난 차, 풀숲에 박혀 있던 낡은 표지판, 길을 건너던 고양이들, 괴물처럼 달려오던 트럭, 그리고 고양이들을 구하려 몸을 던졌다가 트럭에 치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던 순간까지….

그의 눈앞에 피로 물든 어둠이 몰려오는 듯했고, 갑자기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날의 충격과 고통, 그리고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느끼던 무력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카론이 시동을 걸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넬이 왼쪽 앞발로 카론의 오른손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미스터 카론, 괜찮아요?”

“응, 아니….” 카론 특유의 어정쩡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뒷좌석에 앉은 쏠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론을 바라봤다.


잠시 후, 크게 심호흡을 한 카론이 말없이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쿠르르르릉… 소울 픽업이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내달렸다. 쭉 뻗은 아스팔트길을 달리던 소울 픽업이 이내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급커브길을 돌자마자,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나타났다.

파란색 트럭 한 대가 내리막길에서 길가의 나무를 들이받고 멈춰 있었다.

앞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고, 운전자는 보이지 않았다. 트럭의 앞부분은 처참하게 찌그러진 채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카론은 트럭 앞으로 다가갔다. 트럭 주변을 살펴보던 그의 시선이 앞쪽 풀숲에서 멈췄다.

그곳에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고 있는 남자의 시신이 보였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탓에 앞 유리를 깨고 튕겨 나온 것 같았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눈은 감겨 있었지만 미처 다 지우지 못한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신 옆에, 남자의 영혼이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의 영혼은 뭐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서진 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뒤따라온 쏠과 넬도 트럭을 살폈다. 넬이 조수석에 고개를 들이밀었을 때, 진한 술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조수석 바닥에 뒹구는 술병을 발견한 넬이 나직이 말했다.

“술을 마시고 운전했 봐.”


카론 옆으로 다가온 쏠과 넬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둘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카론이 둘을 돌아봤다.

“왜 그래? 너희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쏠과 넬은 약속이나 한 듯 얼버무리고, 도망치듯 차 뒤편으로 사라졌다.

카론은 ‘시신이 너무 참혹해서 무서운가?’ 생각하고 남자의 영혼 앞에 섰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쉼터로 안내할게요.”

카론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차갑고 건조했다. 남자는 카론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고, 그의 영혼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트럭 뒤편, 쏠과 넬은 놀란 숨을 내뱉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맞지?” 넬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카론을 친 운전자, 그 사람이야.”

쏠은 입술을 앙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작은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그날의 끔찍한 사고가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카론에게 말할까…?” 넬이 다시 물었다.

쏠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쉼터에 가서 아이리스에게 물어보자.”

그 때 카론이 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니?”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쏠과 넬은 얼버무리고, 허둥지둥거리다 뒷좌석에 탔다.

둘의 움직임은 평소와 달리 많이 뻣뻣했다. 카론은 녀석들의 모습에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쏠과 넬은 자신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너희들 오늘 정말 왜 이래? 뭔가 수상한데?”

카론은 운전석에 앉으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카론의 뒤를 따라온 남자의 영혼이 조수석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이제야 좀 정신이 드는지 카론을 슬쩍 쳐다보다 흠칫 놀랐다. 무언가 떠오른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감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게이트하우스에 돌아와 소울 픽업을 차고에 넣었다. 숲길을 따라 쉼터로 올라가는 길, 카론은 아무 말 없이 앞서 걸었고 남자는 두세 걸음 뒤에서 그를 따랐다.

예고에 없던 소나기가 내렸는지 숲길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그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카론은 아무 말 없이 앞서 걸었고, 운전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맨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걷던 쏠과 넬이 발소리보다 작게 속삭였다.

“미스터 카론, 눈치챈 걸까?”

“나도 모르겠어. 평소랑 너무 달라.”

쉼터에 도착한 카론은 남자를 2층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계단을 오르자마자 쏠과 넬은 단숨에 아이리스에게 달려갔다.

둘의 작은 몸은 두려움과 분노로 눈에 띄게 떨렸다. 아이리스는 둘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감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이리스! 방금 저 사람… 카론을 치고 도망친 운전자예요!”

넬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 맞아.” 아이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한테 말해야 할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 그걸 밝힌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카론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냥 놔 두자.”


그때였다. 카론이 계단을 내려와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리스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레몬밤차 한 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카론은 찻잔을 들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 정말 이상한 걸…?”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넬이 되물었다.

“미스터 카론이야말로 이상해요. 오는 내내 운전자한테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평소처럼 장난기 섞인 목소리였지만, 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쏠도 카론을 곁눈질하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나란히 걷지도 않고… 왜 그랬어요?”

카론은 녀석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다가갔을 때, 술 냄새가 확 풍겼어.”

그 순간 쏠의 귀가 움찔했고, 넬은 목을 움츠렸다.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던 거야. 커브길에서 속도도 줄이지 않고 달리다가 나무를 들이받은 거지. 도로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의 영혼을 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싸늘해졌어. 동정심 같은 게 전혀 생기지 않았어. 나도 모르게, 저런 사람한테 누군가 희생됐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

말을 마친 그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셋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이래저래 많이 피곤할 텐데 오늘은 여기서 쉬다가 자고 가렴.”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에 힘이 풀려 집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쏠과 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이리스가 작게 웃으며 주방에 들어가 고등어죽을 데워서 내왔다.

녀석들은 허겁지겁 죽을 먹고는, 카페 구석 따뜻한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낮잠을 잤다.

카론은 카페에서 나와 쉼터 주변을 걷다가 스틱스 강에 내려갔다.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내일 마지막으로 이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이곳에서의 모든 일들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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