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악마가 삼킨 영혼

by 부지깽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카론이 카페로 돌아왔을 때, 쏠과 넬은 소울 가이드들의 저녁 식사 서빙을 하고 있었다. 능숙하게 서빙 카트를 밀며 테이블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카페 안은 맛있는 음식 냄새와 활기찬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영혼들과 소울 가이드들이 함께 어우러져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카론은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던 아이리스가 반갑게 웃었다.

식사를 끝낸 소울 가이드들이 하나둘 숙소로 돌아가고, 셋은 아이리스를 도와 뒷정리를 마쳤다.

그녀는 쏠과 넬에게 찬장에서 꺼낸 동결건조 큐브를 주었고, 카론에게도 이름 모를 차 한 잔을 건넸다.

넬이 무슨 차냐고 물어도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카론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잔잔하고 따뜻한 기운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셋은 지난번에 잤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은 잘 정돈돼 있었다.

쏠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고. 넬도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엎드렸다.

카론은 벽을 보고 옆으로 누워 이불을 덮었다. 잠시 후 셋은 깊은 잠에 빠졌다. 하지만 오늘은 누구도 코를 골지 않았다. 그날 밤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멀찍이 웅크린 채, 조용히 흘러갔다.


그러나 2층은 평소와 달랐다.

밤이 깊어갔지만 운전자의 영혼은 잠들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끝없이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라고 믿었었다.

“영혼? 천국? 지옥? 그딴 게 어딨어?”

살아생전 그는 늘 그렇게 말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뺑소니, 강도, 강간… 어쩌면 살인까지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알코올성 치매 초기 증상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죽으면 끝나는 줄 알았던 세상이, 막상 죽고 보니 영혼이 되었고, 소울 가이드에 이끌려 쉼터까지 왔다. 그리고 다음 날 강을 건너면 지옥불에 떨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자,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더구나 자신을 안내해 온 소울 가이드가 자신이 얼마 전에 차로 치고 도망쳤던 그 청년임을 알아차렸을 때 그의 마음속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분명 지옥불에 떨어질 거야….’ 그는 두려움에 몸부림치며, 다가올 운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이라도 바치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술취해 비틀대던 새벽에 귓속을 파고들었던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속삭임이 떠올랐다.

'바탈님을 불러내.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어….'

구석에 웅크린 채 벌벌 떨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탈남, 바탈님…" 중얼거리다가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스틱스 강 저 아래쪽 깊은 동굴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검붉은 안개 덩어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쉼터를 향해 움직였다.

강 위쪽 하늘에서는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쉼터의 평화를 위협하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일찍 깬 쏠과 넬, 카론은 소울 가이드들의 아침 식사 서빙을 도왔다.

바깥엔 언제부터인지 모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넬이 카트에 접시를 담으며 투덜거렸다.

“우리더러 자고 가라고 한 게 일손이 필요해서였을지도 몰라.”

쏠이 꼬리로 넬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넌 특식 얻어먹으려고 남은 거잖아!”

넬은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으로 쏠을 흘겼다.

카론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리스의 요리 보조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하는 그녀를 도와 생선을 굽고, 식사가 끝나자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마쳤다.

소울 가이드들이 모두 나가고, 쏠과 넬은 참치가 듬뿍 들어간 죽을 맛있게 먹었다.

카론도 아이리스가 직접 내려준 따뜻한 원두커피를 마셨다.

그때, 2층에서 운전자의 영혼이 내려왔다. 그는 잠을 잘 못 잤는지 눈이 퀭했고, 주변에는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기운이 맴도는 듯했다. 카론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그를 안내해 테이블에 앉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강을 건너기 전에는 늘 영혼 맞은편에 앉아 눈을 맞추던 쏠과 넬도 오늘은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녀석들도 불길한 무언가를 느끼는 듯했다. 바깥엔 빗줄기가 세차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카론은 망설였다. 그를 데리고 스틱스 강을 건너야 하는데, 자신과 그는 영혼이라 비를 맞아도 상관없지만, 쏠과 넬은 달랐다. 추운 걸 싫어하는 고양이들에게 폭우는 결코 달갑지 않을 거란 걸 카론은 잘 알았다.

깊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린 카론이 둘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나 혼자 다녀올게. 너희는 여기 있어.” 그 말에 쏠과 넬은 동시에 펄쩍 뛰었다.

“절대 안 돼요! 혼자 가면 안 돼요!”

녀석들의 완강한 태도에 카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책임강이 강한 녀석들이라 쉽게 받아들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앙다문 녀석들의 표정에선 어떤 굳건한 결의까지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왜 그러냐고 물을 새도 없이 쏠이 주방 옆 창고로 쏜살같이 뛰어가더니, 고양이 우비 두 개를 물고 나와 넬에게 건넸고 넬은 재빨리 우비를 입었다.

작은 우비는 쏠과 넬의 몸에 꼭 맞았다. 녀석들은 우비를 입은 채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넷은 카페 문을 나섰다. 그 순간, 아이리스가 주방에서 나오며 다급하게 불렀다.

“얘들아!” 하지만 이미 밖으로 나간 그들은 지붕과 창문을 때리는 세찬 빗소리에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리스는 검붉은 연기 같은 것이 문 끝에 걸려 있다가 빠져나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악마인가…?” 중얼거리는 그녀의 손이 본능적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카페에서 나온 넷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강가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걸었다.

카론이 맨 앞에 섰고, 몇 걸음 뒤에 운전자가, 그 몇 걸음 뒤를 우비를 입은 쏠과 넬이 뒤따랐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어두웠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평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키 큰 나무들이 오늘은 마치 악마의 그림자처럼 그들을 움켜쥐려는 듯했다. 줄지어 걷는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강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펀트엔 비에 잠기지 않게 두꺼운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카론이 커버를 벗기자, 쏠과 넬이 폴짝 뛰어 뱃머리에 앉았고, 운전자는가운데 칸에 앉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주변에는 섬뜩한 냉기가 감돌았다.

쏠과 넬은 서로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뒤쪽에 선 카론이 장대로 강바닥을 짚고 힘껏 밀자 비에 젖은 배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태운 배가 강 한가운데쯤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강 건너편부터 빗줄기가 잦아들고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틱스 강은 여전히 짙은 먹구름 아래 잠겨 있었다. 강물 위에 낮게 깔린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때 강 아래쪽에 넓게 퍼져 있던 검붉은 안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듯싶더니 그들이 탄 배로 맹렬하게 몰려왔다. 그 안개 덩어리는 눈 깜짝할 새 운전자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곧이어 이상하게 뒤틀리고 부풀어 오르더니, 끔찍한 악마의 형상으로 변했다. 뱀처럼 기다란 팔과 거대한 날개, 그리고 비틀린 고양이 머리를 가진 기괴한 모습이었다.

악마의 눈은 붉게 번뜩였고, 찢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끔찍한 웃음소리가 셋의 심장을 조여 왔다.

카론과 쏠, 넬은 거대한 공포에 짓눌려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악마의 거대한 몸에서 풍기는 섬뜩한 냉기와 음습한 악취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악마가 천천히 카론에게 다가갔다. 카론은 장대를 들어 마구 휘둘렀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눈빛은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그때 쏠과 넬이 용기를 내서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쏠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악마의 팔뚝을 할퀴었고, 넬은 악마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악마가 손을 휘젓고 발을 흔들자 둘은 맥없이 뱃머리 쪽으로 내던져졌다.

악마가 섬찟한 미소를 흘리며 내뱉었다.
“난 싱싱한 영혼이 좋아! 너희들은 조금 있다가 죽여서 삼켜줄게!”

몸을 돌린 악마가 카론의 영혼을 집어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강 건너편 산허리에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고, 아이리스가 빛의 속도로 날아왔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이 악마의 음습한 기운을 단번에 제압했다.

그와 동시에 아이리스의 손끝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뿜어져 나와, 거대한 채찍처럼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악마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채찍을 피하려 했지만, 무지개 채찍은 번개보다 빠르게 악마의 몸을 휘감았다.

치이익! 채찍이 닿는 곳마다 악마의 검은 형상이 치지직! 타들어갔다.

“크아아악!” 악마의 비명이 강물 위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악마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했다. 채찍이 악마의 몸을 조여들수록, 악마는 더욱 거칠게 몸부림쳤다.

아이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눈빛이 달라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무지갯빛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무지개 채찍이 악마의 몸을 더욱 세게 조였고, 악마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 바람에 악마의 입에서 검붉은 입술 모양에 박쥐의 날개를 단 루어들이 튀어나왔다. 루어들은 아이리스의 채찍에 휘말려 들어갔지만, 그 중 한 놈이 용케 빠져나와 스틱스 강 아래 쪽으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이리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채찍을 쥐지 않은 왼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강물 한가운데 검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녀는 채찍으로 꽁꽁 휘감은 악마와 루어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졌다.

첨벙!

놈들이 강물에 떨어진 순간, 검은 소용돌이는 악마를 집어삼켰고 악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스틱스 강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고요해졌다.

아이리스는 펀트에 내려앉아 카론과 쏠, 넬을 살폈다. 쏠과 넬은 숨을 헐떡이며 악마가 사라진 강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카론도 넋이 나간 듯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배 한가운데 운전자의 영혼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악마에게서 해방되었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이리스가 한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쓸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운전자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그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두려움 대신 깊은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돌려 카론과 쏠, 넬을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짓고 하늘로 날아올라 무지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느새 비가 그쳤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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