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 도착한 카론은 캠핑장 꼭대기 느티나무 바로 아래 사이트에 텐트를 쳤다.
주차장에서는 가장 멀었지만, 엄마 아빠의 유골함이 묻힌 곳과는 가장 가까웠다.
카론은 땀을 뻘뻘 흘리며 캠핑 왜건으로 짐을 옮겨서 정리한 후 에밀리와 시원한 캔맥주를 마셨고, 쏠과 넬은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캠핑장 이곳저곳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붉은 노을이 캠핑장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카론은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고 토치로 불을 붙여 장작불을 피웠다. 쏠과 넬은 장작불 옆 작은 캠핑의자에 앉아 눈을 반짝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망설이는 카론의 마음에도 불을 붙였다.
‘에밀리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카론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카론의 표정을 읽은 에밀리가 나직하게 물었다.
“카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카론은 잠시 주저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에밀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 줄까?’
그는 갈피를 못 잡고 쏠과 넬을 힐끗 바라 봤다.
녀석들은 ‘그냥 말해!’라고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은 용기를 냈다.
심호흡을 해서 숨을 고르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기묘한 일들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처음엔 카론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다.
“카론! 트럭에 치였을 때 머리를 많이 다친 거 아냐? 정신을 잃었을 때 꿈을 꾼 모양이야. 내가 같이 병원에 가 줄게. 정밀검사를 받아 보자…”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 넬이 ‘빽!’ 소리를 질렀다.
“진짜라구요!”
넬의 외침에 에밀리는 들고 있던 맥주캔을 놓칠 뻔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고양이가… 어떻게 말을?”
쏠이 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소리쳤다.
“야! 제발 야옹 먼저 하라고!”
에밀리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카론에게 방금 전 ‘꿈을 꾼 것 같다’고 했는데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팔뚝을 세게 꼬집어 봤다.
그녀는 “아얏!” 소리와 함께 결국 들고 있던 맥주캔을 놓치고 말았다.
카론이 에밀리가 떨어뜨린 맥주캔을 주우며 입을 열었다.
“에밀리! 제 이야기는 다 사실이에요. 얘들이 이야기 속 소울 가이드고요. 얘가 쏠, 쟤가 넬이에요.”
에밀리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쏠과 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쏠은 말없이 그녀의 시선을 받았고, 넬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란과 놀람이 뒤섞여 있던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이내 신기한 듯 팔을 뻗어 쏠과 넬을 만져 보았다. 쏠은 귀찮은 듯 그녀의 손길을 내버려 두었고, 넬은 가만히 있다가 발톱을 세운 앞발을 들고 소리쳤다.
“그만 좀 만져요! 애써 빗은 털 엉킨단 말야!”
넬의 고함에 다시 한 번 놀란 에밀리가 “미안해! 너무 신기해서 그만…” 하고 얼버무렸다.
에밀리가 눈짓으로 넬을 가리키며 카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카론! 쟤 은근 성깔 있다.”
카론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사고 후유증’으로 치부할까 봐 내심 불안했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다 믿어주었다. 물론 말하는 고양이들의 역할이 컸지만….
카론의 얼굴에 깊은 안도감이 스쳤다.
활활 타던 장작불이 사그라들어 은은한 숯불이 되자, 쏠과 넬의 앞발이 분주해졌다.
쏠은 긴 꼬치에 꽂은 닭고기를 돌려가며 구웠고, 넬도 마시멜로를 잔뜩 꽂은 꼬치를 돌리기 바빴다.
카론은 안주 접시에 땅콩과 건포도를 담고, 캔맥주를 따서 에밀리와 건배를 했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마침내 소울 가이드를 하며 꿈꾸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났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홀짝이던 에밀리가 마른 안주에 싫증 났는지, 쏠이 땀 뻘뻘 흘리며 구운 닭꼬치 하나를 슬쩍 빼서 입에 쏙 넣었다.
쏠이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는 황당한 표정으로 에밀리를 쳐다봤고, 넬은 그 모습을 보고 깔깔거렸다.
에밀리는 이번에는 “넬! 저기 생쥐!”라고 소리쳐 넬의 시선을 돌리고, 잽싸게 마시멜로를 하나 빼서 입에 쏙 넣었다. 넬이 뒤늦게 자신의 마시멜로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소리쳤다.
“내 마시멜로! 으아앙~ 저 언니 강적이다!”
그 모습을 본 카론은 유쾌하게 웃었다.
‘에밀리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녀는 툴툴대는 녀석들의 불만을 한 번에 잠재웠다.
그녀가 녀석들에게 몸을 숙이며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우리 사무실에 예쁘고 멋진 고양이들 많은데… 보러 갈래?”
에밀리의 갑작스러운 ‘소개팅 제안’에 녀석들의 찡그린 얼굴이 순식간에 펴졌다.
그녀가 ‘내가 괜히 동물보호센터 소장이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카론을 향해 윙크했고, 카론은 참았던 웃음을 시원하게 터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카론은 문득 제이미가 떠올랐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끝내 구애를 거절당하고, 그 절망감에 난간에 몸을 기대려다 추락사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론은 고개를 돌려 에밀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 여자라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카론의 시선을 느낀 에밀리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쑥스러움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던 넬이 소리를 '꽥' 질렀다.
“얼굴에 구멍 나겠네! 활활 탄다 활활 타!”
카론과 에밀리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넬을 째려 봤지만, 넬은 능청스럽게 마시멜로만 오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던 쏠이 꼬치에서 뺀 닭고기 조각을 야무지게 베어 물며 말했다.
“카론! 오늘은 음악 없어?”
넬도 장난기를 거두고 잘 익은 마시멜로를 입에 쏙 넣으며 중얼거렸다.
“카론! 우리 팀 테마곡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녀석들은 어느 순간부터 카론의 이름 앞에 붙이던 ‘미스터’를 생략하더니 은근슬쩍 말까지 놨지만, 카론은 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가볍게, 쿨하게’ 웃어넘겼다.
‘우리 팀 테마곡’이란 말에 카론이 ‘씨익’ 웃었다.
“내가 미리 준비해 왔지. 흐흐흐…”
그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서 휴대폰에 페어링시킨 후 미리 찾아둔 노래를 터치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숯불 사이로 루이 암스트롱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 흘러 나왔다.
허스키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세상 모든 것들이 사랑에 빠진 듯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을 이겨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그리고 다시 시작될 삶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듯한 노래였다.
넷은 말없이 노래에 빠져들었다. 쏠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살짝 살짝 흔들었고, 넬은 장작불 앞을 빙그르르 돌며 춤을 췄다.
카론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에 비친 불빛 너머, ‘진짜 삶의 색깔’이 번져오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자리에 앉은 넬이 물었다.
“그런데 카론! 아까 혼자 어디 갔다 왔어?”
“흐흐흐…”
카론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쏠이 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웃지 좀 마! 바보 같잖아! 연애 안 할 거야?”
넬도 “히히히…”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카론은 녀석들을 번갈아 보다가 “푸하하…” 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 바람에 미처 삼키지 못한 맥주를 뿜었고, 넬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으이구! 드럽게…”
그 말에 넷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장작불도 불꽃을 타닥타닥 튀기며 웃는 듯했다.
신나게 웃던 카론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셔츠 윗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는 반으로 두 번 접힌 종이를 펼치며 소리쳤다.
“짜잔!”
그가 펼친 종이 위쪽에 큼직한 글씨가 씌어 있었다.
「조정교실 등록증」
서류 아래쪽엔 카론의 이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쏠과 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우와아!” 환호성이 터졌다. 카론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다.
“돈 모아서 배도 하나 살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말했다.
“뱃머리에 새길 거야 ‘Karon & Sol & Nell’이라고….”
“꺄악!”, “오예!” 쏠과 넬이 폴짝폴짝 뛰며 소리를 질렀다.
에밀리는 그런 셋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그들의 순수한 꿈을 응원하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녀가 카론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쏠과 넬은 둘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달빛이 쏟아지는 캠핑장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강물 위로 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배’는 아직 출항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대 대신 노를 들고, 영혼 대신 ‘장밋빛 인생’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