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이런 사기꾼 놈들!

by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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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서울로 떠난 후 집안에는 다시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상순 씨는 독한 약 기운에 취해 깜숙이를 품에 안고 낮잠에 빠졌습니다.

정규 씨는 마당 가운데 툇마루에 걸터앉아 꼬깃꼬깃한 메모지 두 장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습니다.

희뿌연 연기 사이로 그의 미간이 더 깊게 패었습니다.


메모지 한 장에는 상순 씨가 간신히 기억해 낸 첫사랑 남자의 정보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름 양우진, 1971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OO방직 도련님, 당시 대학생’


정규 씨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허, 참나! 방직공장 아들? 뼛속까지 귀하신 도련님이셨구만. 할망구가 눈은 더럽게 높았네.”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습니다.

평생 고생만 시킨 자신과 달리, 그 시절 ‘방직공장 아들’이면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어 괜히 위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114에 전화해 알아낸 서울에 있는 ‘XX 흥신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규 씨는 한참을 주저하다 떨리는 손으로 폴더폰 버튼을 꾹꾹 눌렀습니다.

“여보쇼. 거기 사람 찾는 데 맞수?”

수화기 너머로 자다 깬 듯한, 껄렁껄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예…. 뭐, 맞긴 맞는데….”

“저… 옛날 사람을 좀 찾을 수 있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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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흥신소가 망해 간판 내린 지 반 년이나 지났는데,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호구였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장님 행세를 시작했습니다.

“아, 예예. 찾을 수 있습니다. 근데 옛날 사람이면 조사가 좀 빡센데. 일단 기본 경비가 오십만 원은 듭니다.”

“오, 오십만 원?”

정규 씨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새벽부터 뼈 빠지게 리어카를 끌어 번 돈이 고작 4,400원이었습니다.


“아이구! 내가 형편이 많이 어려운데… 죽을 날 받은 우리 할망구가 죽기 전에 꼭 좀 보고 싶다고 해서… 오십만 원은 없는데… 좀 깎아줄 수 없수?”

상대방은 수화기 너머 노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절박함을 직감했습니다.

‘돈 없는 늙은이네. 길게 끌면 나가리 되겠군.’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건 곤란한데요, 사정이 그러시면…. 그럼 할아버지는 얼마까지 가능하신데요?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제가 웬만하면 맞춰드릴게.”

“내가, 비상금 모아둔 게 딱 삼십만 원 있는데….”

삼십만 원이란 말에 상대방의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꽁돈 삼십만 원이면 며칠 술값으로 충분했습니다.


“에이… 삼십만 원이면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거 참, 할아버지 사정이 너무 딱해서 내가 그냥 봉사하는 셈 치고 해 드릴게요. 돈은 바로 보낼 수 있으시죠?”

“그럼, 그럼. 당장 보내리다! 아이고, 정말 고맙수!”

정규 씨는 이십만 원이나 아낄 수 있게 된 게 감지덕지해서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에게 연신 머리를 숙였습니다.

상대방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정규씨는 상순 씨가 깰까 봐 살금살금 옷을 챙겨 입고 장롱 깊숙이 넣어둔 통장을 꺼내 집을 나섰습니다.

잰걸음으로 이십 분을 걸어 읍내 농협에 도착했을 때, 정규 씨의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번호표를 뽑았습니다.


“어르신, 삼십만 원이나요? 어디로 보내시는 건데요?”

송금 신청서를 받아 든 여직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평소 푼돈만 입금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큰돈을, 그것도 낯선 이름의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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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낼 데가 있어서 그래. 급하니까 빨리 좀 해줘.”

“요즘 어르신들 노리는 보이스피싱이 많아서요. 혹시 검찰이나 경찰이라고 전화 받으셨어요? 아니면 자녀분이 사고 당했다고….”

“아, 아니라니까! 내가 사람 좀 찾으려고 흥신소에 보내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묻는 거야!”

정규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아내가 걱정돼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여직원은 깜짝 놀라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서둘러 송금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은행 문을 나서자마자 정규 씨는 재발신 버튼을 눌렀습니다.

“방금 돈 보냈으니 확인해 보시우."

“아, 예. 들어왔네요.”

“최대한 빨리 찾아주시우. 우리 할망구 시간이 별로 없수.”

상대방은 입금이 확인되자 목소리가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르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내일 저녁까지 찾으시는 분 어디 사는지 파악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의 호언장담에 정규 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신이 사기당한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이 됐지만, 하루 종일 기다리던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규 씨는 해가 지고 나서야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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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무슨 소리야?”

다시 걸어봐도 똑같았습니다.

열몇 번을 걸어도 기계적인 안내 음성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정규 씨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는 읍내 파출소로 황급히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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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 양반! 이것 좀 봐줘! 내가 어제 여기다 돈을 보냈는데 전화를 안 받아!”

사정을 들은 늙은 경찰이 혀를 찼습니다.

“아이구, 어르신! 요즘 누가 간판에 ‘흥신소’라고 달고 영업해요? 거기 전화번호, 아마 폐업한 지 오래된 곳일 거예요. 명의만 남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에 당하신 것 같네요.”

“뭐라구? 114에서 알려줬는데? 114가 사기를 칠 리 없잖아!”

“114야 등록된 번호니까 알려줬겠죠. 요즘 사람 찾는 데는 ‘무슨무슨 컨설팅’, ‘무슨무슨 탐정사무소’ 이렇게 써요. 아이고… 이를 어째.”


정규 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30만 원이면 할멈 좋은 약, 먹고 싶은 것 실컷 사줄 수 있는 돈인데. 할멈 소원 들어주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사기나 당하다니….'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규 씨의 어깨가 축 쳐졌습니다.


‘할멈 얼굴을 어떻게 보나… 이런 등신 같은 놈…’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정규 씨는, 어쩔 수 없이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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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야, 애비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들이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이구, 아버지! 그런 거면 저한테 먼저 말씀하셨어야죠.”

“너도 바쁜데… 괜히 번거로울까 봐…”

정규 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습니다.


명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찾는 그 사람 정보, 저한테 불러 주세요.”

정규 씨는 가로등 아래로 가서 꼬깃꼬깃한 메모지를 펼쳤습니다.

노안으로 잘 안 보이는 글씨를 확인하려 눈을 부릅뜨고 메모지에 적힌 양우진의 인적 사항을 불러주었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 더 이상 이상한 데 전화하지 마세요.”

“어떻게 하려고? 니가 무슨 수가 있어?”

“요즘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사람 찾는 거 쉽지 않아요. 정식으로 등록된 사설 탐정한테 맡겨야죠.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제일 빨라요.”

“그래. 알았다. 미안하다. 니가 힘 좀 써 봐라… 니네 엄마 마지막 소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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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은 정규 씨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달빛은 너무나도 밝고 환해서, 오히려 정규 씨의 초라한 그림자를 여과 없이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대문을 밀었습니다.

마루 위에 웅크려 있던 깜숙이가 “냐옹~”하고 반갑게 울었지만, 정규 씨는 녀석을 쓰다듬어줄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습니다.

상순 씨는 점점 기력이 쇠해져, 이제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겨워했습니다.

정규 씨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던 사흘째 되는 날 저녁.

그는 마당 한가운데 툇마루에 걸터앉아 연신 담배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잠에서 깰까 봐 진작에 벨 소리를 진동으로 해둔 휴대폰을 꼭 쥐고서였습니다.


드르륵, 드르르륵~.

정규 씨의 휴대폰이 진동했습니다.

액정에 뜬 이름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 명수야!”

정규 씨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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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찾았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정규 씨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트렸습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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