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닌호아 하이난거리>
규는 뚜엣의 손을 꼭 쥐었다.
뚜엣은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규를 바라봤다.
"오빠, 오늘은··· 어디 가요?"
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네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는 날이야.“
첫 번째 행선지는 작은 보석상이었다.
유리 진열대 너머로 반짝이는 금빛의 고리들.
규는 얇은 금반지 두 개를 골랐다.
작은 반지는 마치 맞춘 것처럼 뚜엣의 오른손 약지에 꼭 맞았다.
남은 하나를 뚜엣이 규의 왼손 약지에 끼워줬다.
둘은 손바닥을 마주대며 웃었다.
보석상을 나와 약국에서 미제 천식약을 샀다.
뚜엣은 규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
이어 잡화점에 들른 둘은 흰 머리핀 하나를 고르고, 뚜엣의 엄마에게 드릴 참빗도 골랐다.
가게를 둘러보던 뚜엣이 벽에 걸린 흰 천을 만지작거렸다.
규가 물었다.
“뚜엣~ 그거 사고 싶어?”
“응. 우리 아기 태어나면 입힐 옷 만들고 싶어요.”
“아! 한국에선 배냇저고리라고 해”
순간 규의 가슴이 철렁했다.
‘맞아! 탄이 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지.’
다가올 학살의 밤에 탄을 안고 달리던 기억이 떠올라 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 뚜엣은 천을 살펴보느라 규의 떨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은 작은 찻집이었다.
골목 구석, 담쟁이 넝쿨이 살짝 내려앉은 허름한 간판.
창문엔 얇은 레이스 커튼이 걸려 있었고, 오래된 테이블마다 누렇게 빛바랜 도자기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둘은 구석진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뜨거운 커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레코드에서 팝송이 조용히 흘렀다.
뚜엣이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실··· 이런 데 와서, 커피 마시고··· 그냥, 이야기하고··· 그게 꿈이었어요.”
규는 가만히 웃었다.
“그럼 그 꿈, 오늘 이뤄진 거네.”
뚜엣은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없이 규를 바라 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는 커피보다 더 진한 무언가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오빠는요?”
“응?”
“오빠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꿈이 먼지처럼 가라앉은 가슴 깊은 곳을 더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헤밍웨이처럼 되고 싶었어. 누군가의 전쟁을, 누군가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은 못 본 진실을 기록하는··· 그런 사람.”
뚜엣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어머, 벌써···?”
뚜엣의 놀란 목소리에 규는 시계를 들여다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열두 시 반?”
뜨거운 햇살이 창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둘은 허겁지겁 일어섰다.
규가 찻값을 계산하고, 뚜엣은 살짝 치마를 여미며 문을 열었다.
찻집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햇살과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둘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향하던 그 시각—
김 일병과 린은 장춘동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