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너희 아버지들의 전우

<2025년 4월 5일 저녁・다있어 만물상>

by 부지깽이

지하 1층 감금실 문이 삐걱 열리자, 싸늘한 조명이 머리 위로 깔렸다.

쇠창살 안 철제 의자에 포박된 남자.

그 놈은 눈을 부릅뜨고 셋을 노려봤다.

“이 개자식들… 니들은 곧 죽을 거다.”

목에 핏대를 세운 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쪽에서 곧 알아낼 거다. 너희 셋?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양헌은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하긴, 우리도 네놈 신원 아직 못 깠거든. 근데 꼭 지가 보스인 것처럼 떠드네?”

놈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다시 비웃었다.

“나는 혼자 움직인 거다. 누굴 의심하든 헛수고지.”


하지만—

그 무심히 뱉는 말투, 눈빛, 단어.

민주는 그걸 기억했다.

'데이터를 지우면 아무것도 안 남아.'

'명령은 위에서 아래로만.'

예전에 해킹하던 자료에서 들은, 비밀조직 특유의 화법.


민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시끄러워.”

짧게 내뱉은 탄의 말에, 양헌이 대뜸 물었다.

“약으로 할까, 빠르게 갈까?”

“빠르게.”

민주가 뒤쪽 캐비닛을 열어 묵직한 쇠파이프를 꺼내 건넸다.

양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놈 뒤로 돌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놈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한 방에 갔네.”

양헌이 툭 내뱉었다. 민주는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진짜… 목소리도 짜증, 얼굴도 짜증.”

양헌이 기절한 놈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멨다.

“자~ 인형 놀이 끝! 트렁크 오픈!”

탄의 짚차 뒷문이 열리자, 양헌은 놈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며 투덜댔다.

“쓸데없이 무겁네. 살 좀 빼라, 임마.”

탄이 뒷문을 탕~ 닫으며 짧게 말했다.


“둘 다, 내 차 따라와.”

양헌은 맞은편 골목에 세워둔 SUV로 걸어갔다.

“야상! 어서 타~”

민주는 조수석에 재빨리 올라탔다.

탄은 이미 짚차에 올라 핸드폰을 켜 놓은 상태였다.

리차드 한이 보낸 좌표—대전 대덕구 장동 00번지.

“우리 동네라고?”

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곳은—아버지의 집이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두 대의 차량은 낭월동을 빠져나와 빠르게 달렸다.

대전 도심을 통과해 규와 력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지나 장동 입구에 들어섰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탄은 힐끗 오른쪽을 봤다.

마을 꼭대기 2층집이 보였다.


하지만 내비는 군부대 입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탄은 액셀을 힘차게 밟았다.

마을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부대. 육군 탄약지원사령부

탄이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가 사병들에게 특공무술을 가르치는 곳.

탄은 눈을 감고도 부대 내 시설 배치도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비는 부대 왼쪽 옆으로 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탄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이었다.

“저기다.”

탄이 짧게 말했다.

잡초와 덤불로 덮인 좁은 시멘트길.

그 길을 따라 10분쯤 더 들어가자—낡고 육중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 안쪽은 온통 사각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처마 밑, 나뭇가지 사이, 기둥 옆마다 작은 렌즈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탄의 지프가 문 앞에 멈추자,

쇠를 끄는 소리가 나며 문이 스르르 열렸다.

“우릴 기다리고 있었나 봐.”

민주가 낮게 중얼거렸다.

짚차가 서서히, 안으로 들어갔고, 양헌의 SUV가 뒤를 이었다.

건물은 낮고 넓었다. 단층이지만 길게 뻗어 있었고, 한눈에 봐도 ‘감금’과 ‘격리’를 위해 설계된 느낌이었다.

차가 현관에 멈추자 자동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가자!”

탄의 한마디에 민주와 놈을 들쳐멘 양헌이 주저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

무겁게 울리는 발소리.

정면에서—한 사내가 다가왔다.


백발.

그러나 어깨는 군용 철판처럼 곧았고, 성긴 머리칼 아래로 맹수 같은 눈빛이 번뜩였다.

민주는 숨을 삼켰고, 양헌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탄은 자세를 바로 고쳐 잡았다.

“누구십니까?”

탄이 물었다.

사내는 대답 대신,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들어온 건, 너희들이다.”

굵고 낮은 목소리가 공간을 때렸다.


그때 탄의 휴대폰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

[박원배, 73세. 너희 아버지들의 전우.]

탄은 숨을 삼켰다.

민주의 손끝이 떨렸다.

양헌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박원배…”

탄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세상에 숨겨졌던, 또 하나의 이름이 지금, 문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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