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비리까지 21km (2)

by See Oak

“아주머니! 미카! 여기야 여기!”


마을 초입 산의 능선으로 내려오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윤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등산스틱을 짚어가며 아주머니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아르가 강 앞에 있는 너른 잔디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을 초입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알베르게가 있었다. 비용은 좀 있었지만 굳이 마을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알베르게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공립 알베르게는 언제나 입실 시간이 정해져 있다보니 신경쓰였지만 사설은 조금 자유로웠다. 마침 알베르게의 주인도 청소가 끝났으니 미리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윤이 화장실에 가는 동안 나는 알베르게 주인에게 그녀를 본 적이 있느냐를 물었고 알베르게 주인은 고개를 저엇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공립 알베르게를 가니까 시간이 되면 그쪽에 가서 다시 한 번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배낭을 정리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윤이 판초우의를 꺼내며 나가자고 했고, 우리는 햇살 드는 잔디에 판초를 깔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주머니와 미카를 기다렸다.


“아이고, 먼저 와서 고생 많았어요!”

“윤, 수호 고마워요! 우릴 기다려줘서.”

우리는 아주머니와 미카의 배낭을 받아주었고 알베르게로 안내해주었다. 8인실이었는데 아직 순례자들이 없어서인지 방을 따로 빌린 기분이었다. 짐을 풀고 미카와 아주머니도 강가의 잔디밭으로 나왔다.

“근데 두 분은 소통도 어려웠을건데 이야기는 좀 나누면서 오셨어요?”

윤이 물었다.

“아이 그럼! 얼마나 즐거웠는데.”

미카는 일본인이었고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아주머니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쾌활하게 웃으며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미카도 아주머니가 재밌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언뜻 보면 통통한 초등학생 아들과 어머니같았다. 아주머니가 봉지에서 주섬주섬 사과나 빵 등을 꺼냈다.

“마을에 가게에서 팔길래 몇 개 샀어.”

미카는 이미 많이 먹은 듯 손을 저었고 윤은 빵을 들고 뜯었다. 나는 사과를 강으로 가져가 헹구었다. 허공에 몇 번 털어내고 바로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물었다. 사과는 향긋했고 단단했다. 아삭한 식감이 좋았고 앞으로도 오이 대신 걸으면서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우리는 잔디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을 초입이라 도착한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후 네 시쯤 되니 J.P와 마릴 일행도 보였다. J.P는 단박에 나를 알아보았다.

“수호!”

J.P는 영어 억양이 잔뜩 들어간 발음으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길게 이야기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는 등산스틱을 들어 인사를 하고 마릴과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공립 알베르게로 갔더라면 J.P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J.P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별의 이야기를 했고, 그가 유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도 마릴과 걸으며 나름의 즐거운 순레길을 보내고 있는 듯 하여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두기로 했다.

“2층 주방 써도 된다고 알베르게 주인이 말했어요.”

윤이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트 위치도 보았으니 간단히 먹을걸 사서 해먹자고 제안했다.

“미카, 씻을건데 같이 갈래?”

윤 형과 알베르게로 들어가며 미카를 불렀다. 미카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처다보았다.

“응……? 미카랑 왜?”

아주머니도 놀랐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미카… 여자야.”

윤 형이 나지막이 속삭이고 나를 끌고 들어갔다. 등 뒤로 아주머니와 미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미카, 아까는 미안, 사실 정말 몰랐어 내가 좀 둔한 편이거든!”

주방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나는 몇 번이고 미카에게 사과했다. 아까의 상황이 재밌었는지 아주머니와 윤이 키득거렸다. 미카도 쿨하게 용서해주었다. 자신이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그런거라고 말했다.

“미카는 꿈이 뭐야?”

미안한 마음에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물으면서도 나는 별, 그녀의 생각이 떠올랐다. 낯간지러운 질문인가 싶었는데 미카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배우가 되는데 꿈이에요!”

미카는 액터에 힘 주어 말했다. 순수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큰 꿈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미카의 젊음과 꿈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와, 나중에 정말 배우 되면 이 순례길이 많이 생각나겠어.”

“액터! 아 연기자가 되고 싶단 거였어?”

면을 삶던 아주머니가 놀라며 말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며 걸었는지 궁금한데요?”

테이블에 포크와 접시를 두고 있던 윤이 말했고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였지만 모두가 한 가족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우리는 내일 팜플로나까지 함께 걷기로 했다. 팜플로나는 넓은 곳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미카가 늦잠을 자는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으니 무조건 공립 알베르게로 향하기로 했다. 물론 미카는 앞으로 그럴 일이 없으거라며 일찍 자겠다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6. 주비리까지 2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