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팜플로나까지 20km

by See Oak

일곱시 쯤 돼서야 우리는 모두 준비를 끝마쳤다.

“여기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나올 마을도 다 좋았으면 좋겠어요.”

부지런히 준비한 자신이 뿌듯한지 미카가 잔뜩 들뜬 마음으로 말했다.

“일찍 도착해봐야 공립알베르게 앞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오늘은 좀 천천히 가요. 아주머니하고 미카도 힘들면 얘기하세요.”

윤이 말했고 모두 동의했다. 각자의 보폭대로 걷자고 먼저 제안한 건 윤이었으나, 윤이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상대의 진지한 마음을 배려했고, 그 진지함에 방해가 되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고, 또 남에게 방해받아선 안 됐다. 하지만 하루를 함께 걷고 밥을 해먹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눈녹듯 사라졌다. 모두가 남이라고 생각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끈끈해졌다. 낙오자는 결국 스스로 도태되는게 아니라 앞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좀 잡으면 어떻고 잡히면 어떠한가. 빨리가서 뭐 대단한 걸 얻는 것도 아니고. 나는 생각을 조금씩 고쳐잡으며 길에 적응하려 하고 있었다.

팜플로나는 굉장히 큰 도시였다. 순레길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대도시였다. 이후에 맞이할 도시들에 비하면 그대로 작은 편이었지만 나름의 번화가였기 때문에 나는 기대가 컸다. 마침 주말이고 하니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실컷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윤이 걷는동안 팜플로나에 맛있는 버섯요리집이 있으며 또 괜찮은 타파스 가게가 많다고 했다. 타파스는 접시요리를 뜻했다. 길을 가다 배가 고파지면 스페인 사람들은 타파스를 파는 곳에 들어가 타파스 몇 접시와 와인 또는 맥주를 곁들인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타파스는 그 접시에 담길 수 있는 한입거리의 모든 음식을 포함하기 때문에 가게마다 특색있고 다양한 요리가 많다고 했다. 북쪽길을 걷다 보면(윤이 북쪽길 얘기를 했을 때, 나는 그제야 산티아고 순례길이 여러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위의 간으로 만든 타파스도 있다고 했다. 음식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침이 고일 정도로 배가 고팠다. 아침은 전날 식료품 가게에서 구입한 빵이나 과자, 초콜릿 등으로 떼웠고, 사과에 맛을 들인 나는 사과를 한 봉지 사서 오이처럼 꺼내먹었다. 윤, 미카는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아주머니와 함께 빵이나 초콜릿 등을 즐겨먹었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대부분 가족들이나 친구분들하고 많이 오시던데.”

윤이 물었다.

“성당에서 순례자들을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시간이 안 맞아서 같이 못 가고 뒤늦게 왔지. 뒤늦게 가려니까 누구 같이 갈 사람이 있나.”

“파리에서 버스 타고 오신거에요? 길 찾는건 힘들지 않으셨구요?”

“길 찾느라 애먹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열심히 물어물어 이곳까지 오고 나니까 또 별 거 아니다 싶더라구.”

나는 아주머니가 정말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영어조차 소통이 안 되는 곳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아주머니가 삶에 대해 거의 통달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어디에 내놔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헤쳐나갈 사람. 그런 아주머니의 힘 때문에 우리가 모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코스가 짧은 구간이었고, 날씨도 유난히 화창했다. 봄의 기운이 중간중간 느껴졌다. 주택가의 담장에 꽃이 피었고 풀내음도 났다. 도착 한시간 정도를 남기고 도착한 마을에는 겹벚꽃이 활짝 피었다. 잠시 앉아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진한 분홍색의 꽃잎과 그 위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발바닥을 주물렀다. 미카와 윤이 어느새 아이스크림들 들고 와서 더위를 식혔다.

“한 시간만 더 가면 되겠는데.”

어플로 거리를 확인한 윤이 말했다. 얼마 안 남았다는 소리에 미카도 아주머니도 힘을 냈다. 한참 걷다 보니 화창한 공원을 지나 어두운 회색 계열의 성벽이 보였고, 그곳이 팜플로나라고 윤이 말했다. 나와 미카는 신이 나서 마을 입구 성벽의 언덕을 경쟁하듯 뛰어올랐다. 신이 나서 뛰어오르는 폼을 보니 그제야 미카가 소녀처럼 보였다. 나는 혼자 착각한 게 웃겨서 헛웃음이 새었다. 미카가 먼저 올라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팜플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이제 막 한 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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