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글로스 색깔이면 정말 예쁠것 같은 영롱한 약간의 보랏빛이 가미된 핑크색.
딱 알맞게 눈에 들어오는 구슬같은 모양에 중간 테두리.
어릴 때 나는 자두맛 사탕을 입 안에 넣고 그 사탕을 입안에 굴리고 또 굴렸다.
입안을 또륵 또륵 구르던 그 사탕은 이윽고 어느 순간 입 안에서 쩍! 갈라지는 순간이 온다.
그 때 부턴 혀나 입 안에 상처가 날 듯한 기분을 참아가며 계속 사탕을 침으로 녹여간다.
더 녹았을 때는 아드득 치아로 깨물어 작은 조각을 낸다.
아마도 입 안에서 반짝이는 유리조각처럼 그렇게 사탕이 있을 것이다.
아쉬운 여운을 남기며 다 녹여진 자두맛이 입안에 아려있다.
자두맛 알사탕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데굴데굴 굴리다"라는 표현과 "꿀꺽 삼키다"라는 표현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 무렵의 생각의 끝에 자두맛 알사탕이 있었다.
눈물이 '눈'이라고 불리는 안구체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다.
슬픔이- 남편과의 기억이 마음의 방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다.
눈물을 꿀꺽 삼켜도, 불현듯 예고 없이 주륵 스며나오는 걸까.
그 때 그 기억이- 무언가를 보고 들으면, 예고 없이 책이 가득찬 책장에서 툭 떨어진 책의 페이지처럼 그렇게 내 앞에 펼쳐지는 걸까.
펼쳐진 그 기억도 입구가 작은 마음 주머니에 넣어 꿀꺽 눌러 삼킨다.
주머니가 늘어나서 얹힌 것처럼 - 그 기억이- 그대로 멈춰- 마음 가득 답답해진다.
콜라를 마시며 그 기억이 개운히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는 내려간다. 어떻게든.
그리고 다시 기억의 장롱으로 세탁이 잘 되어 개켜진 옷이 되어 돌아간다.
다시 그 옷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자두맛 사탕의 기억을 이렇게 글로 써도, 내 머리 속에는 영상으로 떠오른다.
그 영상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그 영상을 혹여 누가 본다 해도 내가 아니기에, 그 자두맛 사탕의 달콤한 기억을 그대로 공유할 수는 없겠지.
기억이란 추억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만 꺼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달콤한 기억의 과자가 나올지, 씁쓸한 기억의 과자가 나올지 모르는 그런 것.
나온 과자는 나만 먹을 수 있다는 것. 누구와 나눌 수 없는 나만의 과자라는 것.
눈이 올 것만 같다. 남편 없이 처음 맞는 이 눈을 - 어떻게 바라보나 - 결국은 알아서 눈이 내리고, 알아서 시간이 가겠지만. 괜한 두려움과 괜한 걱정 속에 이 겨울의 진입로에 서있다.
너무 좋았어서 계속 꺼내지는 이 과자가 왜 눈물을 흐르게 할까.
손등으로 쓰윽 쓰윽 눈물을 훔치며 생각한다.
생각의 끝엔 생각을 멈추게 할 자두맛 사탕이 필요한 법이다.
사탕을 사러 나가봐야겠다. 아직도 슈퍼에 자두맛 사탕을 팔아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