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기일을 앞두고 내뱉어 보는 마음의 소리.
어딘지 나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한 모든 것이 실망스럽고, 부끄럽고, 부질없어 보이고- 나 자신에게서 도망을 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가 없다. 순간 떠올려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깊은 수심의 바다를.
바다 위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에서부터 그 햇빛이 비춰주는 영역을 지나 더 더 깊이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며 내려가 본다.
드라마나 광고에서는 배우들이 물속에서도 눈을 뜨고 있던데, 나는 하지 못해 늘 수경을 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바다에서는 난 눈을 뜰 수 있다.
난 생각보다 더 볼 수 있다. 옅은 파랑에서 파랑이 아닌 검정에 가까운 색으로 바다가 깊어지는 광경을. 내 코끝에서 나오는 동글동글 기포를.
귀가 먹먹해서가 아니라 바다가 너무 깊어 고요해지는 그 순간까지 바다 밑에 내려간다.
이러다 밑바닥에 정말 본 적도 없는 큰 심해어를 갑자기 만나면 어떨까 생각도 들지만, 내 상상 속의 도피처로 떠올린 오늘의 바다는 그저 깊이깊이 내려만 갈 뿐이다. 그렇게 고립이 된다.
그 쯤이 되면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고, 그 심해에 그저 둥둥 몸을 해저 지면에서 떠올려 놓고 가만히 있어 본다. 답답한 마음이 가실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소리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여기까지 마음의 생각을 쓰고 나니, 왠지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깊은 바닷속에 정말 다녀온 것 같이.
남편의 1주기가 이번 주말이다. 아직도 마음속에 생생한 그날로부터 1년이 되었다니.. 시간은 가차 없이 흘렀다. '오빠, 정말 그렇네.. 1년이네..'...
견디기 버거운 일이 생기면, 생각했다. 남편이 아니라 내가 겪어서 다행이라고. 물론 남편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어서 같은 상황에서 더 잘했을 거라는 걸 알지만,-
이 마음의 아픔과 힘듦을 남편이 짊어지지 않아서.. 못난 내가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아픈 걸 남편이 겪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난 그 사람 등 뒤에 숨어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난감한 상황일 때는 약한 나지만 최선을 다해 내가 나섰다. 그 사람이 있어서 그런 힘이, 그런 마음이 생긴다는 게 참 행복했다.
남편보다 약한 내가 남은 이 상황을.. 가진 능력치로 잘 버티지도, 이겨내지도 못하는 내가 - 남겨져서 대신 감당하는 게 외려 다행이라 생각하는 건 왜일까. 만약 반대여서 남편이 남겨져 있었다면,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싶어서.. 그걸 하늘에서 보는 내 마음이 슬플 것 같아서..이지.
한켠으로는 내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 주어지는 시련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내 잠재력에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1편만 보고 너무 울어 2편을 보지 못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남편과 딸의 마음의 시간은 그때부터 멈춰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에 모르는 초등학생이 그들의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남편에게 왜 이렇게 늙었냐- 이렇게 하고 사는 거냐- 등등 얘기를 하고, 딸을 보면서 반가워한다. 어린 연기자가 정말 너무 연기를 잘해도 잘했다. 정말 그 아내, 그 엄마 그 자체였다.
보는데, 나도 남편이 그렇게 몇 년 뒤에 내가 모르는 초등학생으로 잠시 환생해서 나에게 나타난다면, 나에게 뭐라고 할까 싶었다. 정말 그런 기적이 있다면 단 한 시간 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그런 기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의 아기 때부터 사망하기 전까지의 사진들을 보면서, 동네에서 씽씽카를 타고 건널목에서 "원숭아, 놀자!"라고 친구에게 외치는 남자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에게도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었다.
집에 읽어보지도 못한 책들이 아주 많이 꽂혀있다. 근데, 제목만으로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저번 마트 얘기를 쓸 때는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 제목이 그렇게 와닿았다. 요즘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와닿는다.
처음에 제목을 볼 때는 의미를 몰랐는데, 그 책을 아직 한 페이지도 못 펼쳐 봤지만, 내 삶이 그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난 "작별하지 않는다."
연말에 시와서에서 특별히 한 달 전부터 주문해 구매한 달력이 있다. 내가 달력을 잘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그림도 시도 놓치기 어려워 특별히 샀다. 3월을 넘겨보니, 이런 하이쿠가 있다.
"봄바람 부네 기다린다고 하니 이제 가야지 -나쓰메 소세키"
남편의 화장터 대기 공간 창문에서 보았던- 아직은 낯설었던 겨울을 머금은 봄바람과 봄 햇살- 기억이 난다. 그 작은 창문으로 마른 나뭇잎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를 보는데, 남편 아픈 거 다 태워져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생각했고. 이렇게 좋은 날씨 같이 맞았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3월 달력을 보는데, 남편이 봄바람 분다고. 납골당에서 나에게 기다린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꽃을 들고 봄바람을 타고 남편을 보러 다녀와야겠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과 도망칠 수 없는 나 자신을 딛고 다녀와야지.
마음속에서 검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365일의 흔적을 가지고 갈 테니, 잘 왔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줬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