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멈춰진 시간들을 헤쳐나가는 그동안에 대한 기록.
내 마음이 체력이 좋았을 때는 삶의 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짐들이었다.
그 작은 짐을 내 마음에 들여놓아도 내 마음속 공간이 매우 큰 부동산 건물을 가진 사람 같아서. 그 작은 짐들 좀 놓아도 불편함이 없었고, '더 줄 테면 줘봐라' 하는 자못 오만한 마음도 들었다. 받을 땐 불평을 쫑알거리면서도 짐을 받아들이는 게 내 마음에 벅차지 않았다.
나는 고백하건대 평생을 중2병으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중2병에 정확히 들어맞는지는 몰라도 진지하고, 예민하고, 어떤 일에 이따금 너무 깊게 몰입했고, 넘치게 감정적이었다. 주변이 생각보다 보이지는 않았다. 나에게 펼쳐지는 일들만으로도 나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좋냐면, 나는 싫다. 근데 그런 성향이 글을 쓰는 데는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겨먹은 내가 갑자기 남의 탈을 쓸 수도 없으니 받아들이지만- 누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면 진실이라 해도 그냥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그나마 좀 분리해서 유사 중2병을 다룰 수 있게 된 건 30대 즈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
요즘의 내 삶을 말하란다면- 작년 연말부터 나는 가족 외의 사람들과 연락 및 만남을 갖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몇몇의 일들은 그래도 해야 하긴 했지만,) 심심해서,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느냐, 빨리 사회생활을 해야 정상의 삶을 산다, 그러다 인간관계 끊긴다 등 여러 얘기를 들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지낸 지 거의 7개월 나는 그냥 하루를 흘려보내며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
"남편을 사별해서 힘들겠어요. 그러고 우울증에 걸리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네, 그 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그 상실만이 모든 이유는 아닙니다.
내가 오늘,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 중 일부를 글로 쓰고 밖에 내어 보낼 수 있기까지의 기간들을 생각하면, 이 멈춤의 기간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아직도 다 내어 보낼 수는 없다. 그래도 일부는 정리해서 오늘은 조금은 말해볼 수도 있겠다 싶다.
'난 자리는 알아도 든 자리는 잘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간 자리는 그만큼 더 서운하고, 빈자리가 크게 다가온다는 의미이다-라고 난 생각한다.
남편과 잘 쌓아 올린 하루하루가 있다. 암투병 하던 기간에는 더 절실히 쌓아 올렸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날들을 쌓아 올릴 수 없게 되었다. 구워진 벽돌이 없고, 미장을 해서 벽돌을 같이 쌓아 올리던 인부도 사라졌다.
나 혼자 새로운 집을 지으라는데- 삶은 사소한 것들과 가끔 있는 중대한 일들의 조합이라, 작고 소소한 일들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영화 혼자 보러 왜 못가. 밥 왜 혼자 못 먹어. 여행 혼자 왜 못가. 왜 혼자 못해.
나도 다 혼자 할 줄 알고, 혼자 해 본 적도 있는 일들이다. 혼자 하고 싶었던 적도 있는 일이다.
혼자서 못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 하기 싫은 거고, 그리고 함께 누군가를 부른다면 그 누군가가 나와 함께 만드는 시간의 연주곡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싫은 거다. 그만큼 내가 너무 내 남편과 잘 지낸 게, 남편이 나에게는 잘 맞는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란다면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꼭 그 인형은 매일 안고 있지 않아도, 장식용으로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옷은 낡고 유행이 지났어도 꼭 입어야 하고, 남의 집이 아무리 멋져도- 내 집의 공기와 맡아지지 않지만 알 수 있는 그 향은 내 집만이 주는 안도감인 그런 것.
그런 게 굳이 말하자면, 더는 쌓아 올릴 수 없는 날들이었고,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날이었고, 그래서 속절없이 눈물이 나는 그런 것이었다.
삶의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었다. 남편의 죽음 이후로 내 마음속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그냥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날이 이렇게 더워지기 전에는 동네 산책을 열심히 했다. 의무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꾸역꾸역 걸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내 기준에서는 산책로 및 조경을 잘한 편이라 오르막 코스도 있고 내리막 코스도 있고, 나무와 꽃들도 나름 골고루 심겨 있다.
작년, 남편을 보내고 얼마 안 된 어스름한 저녁, 오르막길 담장에 피어있는 덩굴에서 빨갛게 피어난 장미를 보며 그렇게 울면서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많은 생각과 추억에 왈칵 나오던 그 눈물을 손으로 연신 훔쳐내며 그렇게 걸었다.
1년이 조금 넘은 지금은 이제 눈물을 예전보다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울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제는 그 길을 걸어도 작년 기억은 나지만 울지 않는다. 작년에는 너무 울어 눈의 혈관이 터지도록 울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는 게 지겨울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가급적 그런 상황을 넘기려 한다. 우는 것도 힘들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피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건 바로 "위로"였다. 나는 내 마음을 쏟을 곳, 의논할 곳이 없어 전화나 만남에서 내 감정, 내 복잡한 일들을 얘기하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기복을 분출했다. 그 와중에 듣는 사람은 나를 위로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를 찌르기 시작했던 거다.
의도는 알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계속 찔려갔다. 나중에는 별거 아닌 얘기를 들어도 찔려졌다. 마음이 체력을 잃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의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 졌다. 아무의 이해도 받고 싶어지지 않아 졌다.
특히 제일 나쁜 위로는 비교였다. 나쁜 일끼리의 비교. 나쁜 일 중에서도 좋은 일들에 대한 비교. 아픔을 빨리 이겨낸 사람과 나에 대한 비교. 이혼한 사람과 나에 대한 비교. 아이가 있어 이런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며 넌 아이가 없다며 하는 비교. 부모님과 반려견을 잃은 아픔과의 비교. 그 외 생의 여러 비극에 대한 비교.
아파트 산책 얘기를 했던가. 부부가 같이 산책을 나오고, 아이들 바람 쐬인다고 데리고 나오고, 아름다운 그 모습들을 보며- 난 이제 내가 돈을 아무리 줘도 가질 수 없는 그림을 가진 저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걸까. 수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난 미래를 빼앗겼다고.
그렇게 난 많은 것들에 계속해서 찔려갔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다 내 마음을 찌르고 갔다.
위로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작년 말에는 내 마음은 무엇하나 받아낼 수 있는 멀쩡한 공간이 없었다.
작년 나를 내 자신이 위로하려고, 나를 걱정해 위로하기 위해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그 당시, 난 그 사람들과 연락하고 만날 때까지 연못을 떠다니는 백조였다. 보이지 않는 수면 속에서는 그렇게 떠다니려고 수없는 발짓을 하고 있는 백조. 나는 그 어려운 일 잘 견뎌내고 이제는 위로나 동정받고 싶지 않아-라고 고상한 척, 고고하게 연못 위를 떠다니는 백조.
작년에 벌어진 나에게 잔인했던 일 중의 하나는,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괴로운 일이 있어 들어줄래-라는 유형의 추임새를 넣고 자신의 고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들어보면 괴롭지 않은 건 없다. 들어보면 정말 아픈 이야기들이다. 나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이야기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얘기를- 내 수면 속 오리발짓을 하고 있는 나의 그 시간을 내어주며 들어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는 이야기도 했다.
내 나름대로는- 그들의 추임새대로- 내가 더 힘든 시간을 지났으니, 그 아픔 뭔지 알 것 같아서 도움을 주고 싶기도 했다.
근데 그 와중에 알게 된 건 - 나를 걱정한 건 맞다. - 처음은 그랬다. 그러나 그들은 종국적인 목적은 본인의 아픔과 외로움이었다. 근데 그 아픔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고 해 준- 나의 상황을, 나를, 그들이 평가하는 말을 하는 건 뭐인가. 결국 내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외로움의 해우소로 나를 이용했다면,
적어도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그들의 아픔에 같이 공감하며 더 마음 아프고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왜 해주지 않는 걸까. 왜 연락을 잠시 멈추어 달라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아주 자연스럽게 "잘 지내."라고 그렇게 쿡쿡 물으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내가 보인 일련의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케이스도 있었다.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를 많이 걱정해 그 사람 앞에선 힘든 얘기를 할 수 없게된 경우도 있다. 자신도 그 힘듦의 또 다른 아픔을 지닌 사람이라며 말을 못하게 막는 사람도 보았다. 빨리 잊으라고 나에게 기대치를 높여 채찍질 하는 사람도 보았다. 또 평온한 그들의 삶이 나에게 가시가 될까 봐 대화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보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일도 잘 헤치고 지금도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우월감도 보았다.
사람은 사람을 위로할 수 없었다.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로또 맞은 행운이었다.
작년 연말,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사람을 위로할 수 없구나. 사람은 모두 다 달라서 어쩔 수 없구나. 뭘 해도 '비교'는 사람의 태생적 성질이구나. 그리고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착하려 해도 착할 수 없고, 나는 내가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다.
뭣보다 사람에 대해 실망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도 싫어졌고, 사람이 싫어졌다.
"마음이 건강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그냥 일상다반사고. 그냥 모두의 마음을 풀기 위한 수다고. 그냥 비교 좀 하면 어떤가. 비교해서 내 마음 편해지고 힘내면 되는 거고, 내가 위축되는 비교면 그냥 내 기준 가지고 무시하면 되는 거고. 그런 건데..
찔리고 찔려 상처받은 마음으로 계속되는 그 인간관계를 이어가면서 나를 회복시킬 방법이 보이지 않아 멈춰 섰다. 그리고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면서, 가족- 적어도 나의 생존신고를 할 수 있는 나의 삶의 이유인 사람들-이라는 가장 작은 범위의 상자 안에 나를 넣고 -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 그 와중에도 매일 나에게 실망해 가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단단해지는 내 마음을 느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가고 있다.
난 멈춰 서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예의 바르게도 난 나의 멈춰섬에 대한 양해도 연락해서 구한 별난 사람이다.
지금은 작년 연말 모든 게 나를 찌르던 때보다는 많이 마음이 회복되었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사회생활에 부닥치기에는 모자란 상황이다.
올해 여름 날씨는 견디기가 이미 어렵지만, 7월 말로 시간은 이미 걸어가고 있다. 내 마음도 보이지 않는 행선지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