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독서 감상문]"사양"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및 "인간실격"을 읽은 후의 사적인 감상문

by 목련나무

강한 햇빛이 창문을 투과하여 교실 창문과 바닥에 내려앉던 날이었다.


그 무렵 국어 선생님은 짧은 단발머리에 작은 키의 30대 초반쯤 되는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유쾌한 분이셨다. 학생들은 늘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정말 궁금한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공부하기 싫은 날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늘 나오는 단골 질문은 연애사에 대한 것이었고, 그 다음은 괴담이었던 듯하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 되는데 계기가 된 인생의 책은 무엇이었을까. 손을 번쩍 올려-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책이 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답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았을 때, 매우 두꺼운 장장 3권에 걸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볼 엄두가 안나 그냥 포기하고, 그 당시 나의 원픽이었던 추리 소설을 대출해 왔다.


대다수의 이들이 지능적 추리를 하는 셜록 홈스에 빠져들고 있을 때, 나는 독특하게 말도 안 되는 도둑질을 하며 여기저기 여심을 훔치고는 사라지는 뤼팽에 관심을 두었다. 회색세포 아르큘 포와로 보다도 말이다. 지금 이들의 자리는 명탐정 코난이 독점하지 않았나 싶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게 된 건 그로부터 십 년 이상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백컨데 지금까지도 그 3권 중에 1권밖에 읽지 못했다. 그러나 1권만으로도 나에게는 꽤 큰 충격을 안겨준 책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역사는 반복되기에 지혜를 얻으려면 역사서를 보라는 말이 있다. 역사서로는 어떤 깨달음이 전해지지 않았다. 비범한 사람들 혹은 선택받은 왕좌를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정말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랬구나- 사람은 다 그런 거고, 어떤 상황이 놓여도 그렇게 되는 거구나.. 세밀한 그 생각과 감정과 인간 군상에 대한 글들 속에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너무 당연한 그 생각- 사람은 계속 변한 적이 없구나- 이 꽤 충격적으로 나에게 다가온 책은 그 책이 처음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유명한 작가이고 한동안 베스트셀러 코너에 꽤 오래 있길래 관심이 가서 책만 사두고 좀 오래 읽지 않았다. 그러다 초판본 디자인으로 나온 "사양"을 먼저- 어느 날 문득- 손에 들어 읽었다.


"사양(기우는 해)"은 어느 젊은 이혼녀가 병약한 어머니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걸로 시작된다. 첫 챕터를 읽고, 맨 앞으로 돌아가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었는데- 실제의 충격은 거기서부터였다.


그 책에는 죠스이 수로에 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이 있다. 근데 그 사진을 찍고 얼마 뒤에 다자이 오사무는 그 강에 어느 여인과 몸을 묶어 투신자살을 해 생을 마감한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에 찍히던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작가의 인생만으로도 소설이 되기에 충분했다. 땅으로 고리대금업을 해서 갑자기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일본의 전쟁과 항복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회변화로 그는 귀족 지위가 있어도 귀족이 아니게 되었고, 넉넉하던 집안의 돈은 현실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그 애매한 사회적 위치에서 그는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 또한 어려웠다.


그리고 그는 술과 마약에 중독되었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며, 복잡한 여자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자살도 이미 여러 번 시도한 상태였다. "사양"등의 작품으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 "인간 실격"이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 그는 신문사에 연재하기로 한 "인간 실격"원고를 미리 완성하고 그 신문사에 글이 실렸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든, 자기 관리를 잘하든, 힐링 이야기를 하든 - '양서'라 불리는 책들은 그런 책들 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뇌가 짙어 어두운 사람의 글은 어쩌면 양서가 아닐지도 몰라도-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녹아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의 2대 작가라 한다. 둘 중에 고르란다면 나쓰메 소세키가 좀 더 앞설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와서 "사양"은 몰락한 귀족집안의 이야기이다. 그 집에는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이 있다. 어머니는 병약하지만 나름의 강인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혼해서 집에 들어온 누나가 주인공 중의 주인공인데, 그 누나의 시선으로 이 소설은 쓰여간다.


누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그 현실을 타계해 보려는 자신 사이에 있지만, 그 현실을 움직이게 할 만한 선택지는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간병을 하면서 어머니의 생존에 많은 희망을 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간병의 지침 또한 짊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누나는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동생의 일기를 보게 된다.


남동생은 계속된 마약 중독으로 누나의 결혼을 결국 이혼으로 이끌었고, 군대에서도 집에 돌아오기 어려울 뻔 했었던 데다가, 안 그래도 힘든 집안의 돈을 계속해서 축 내게 하고 있었다.


다시 남동생의 일기로 돌아와- 그 일기 속에는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두서없는 비판이 난무했다. 당시 유행처럼 휩쓸던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도 그는 나가고 있었지만, 공산주의가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임에 모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림이나 글에도 관심이 있어 예술가들의 모임에도 나갔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사람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어느 모임에 가든 그는 귀족의 모임에도 낄 수 없었고, 귀족이 아닌 출신의 사람들과 예술이나 공산주의로 모임을 가져도 그 모임에서 그를 반쪽짜리로 대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결국 현실 도피를 위해 술과 유흥으로 매일을 보낸다.


누나는 동생의 그런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생이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분노의 감정을 같이 느낀다.


그 사이에 그 집안에서 일어나는 귀족집안의 나락으로 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소한 일들이 벌어진다.


남동생은 일자리를 찾겠다며 알고 있는 소설가가 있는 도쿄로 갔지만, 결국 마약과 술에 절어 누나에게 다시는 또 마약과 술을 하지 않겠다는 거짓 다짐을 쓰고 돈을 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누나는 많은 물건을 팔고도 제대로 된 기별도 없고 돈을 달라는 편지를 보내는 남동생을 찾기 위해 도쿄로 남동생이 알고 지내는 그 소설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정작 동생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술에 취한 유부남 소설가의 입맞춤만 경험하고 집에 돌아오게 된다. 삶에 대한 탈출구가 없던 누나에게 그 잠깐의 입맞춤은 마치 탈출구와 같은 연정의 마음을 품는 도화선이 된다. 그리고 그 소설가에 대해 실체 없는, 자신이 그린 환상으로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그녀는 더더욱 그에게 매달리게 된다.


그 소설가는 자신을 이해할 것 같고, 자신과 함께 도망쳐 줄 수 있을 것 같고, 자신이 꿈에 그리던 어떤 삶을 살게 해 줄 것 같다는 마음을 그녀는 품은 것이다. 터져 나오는 마음을 누나는 편지에 담아 그 소설가에게 여러 번 부쳤으나, 소설가는 아무 답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그녀는 기차를 타고 소설가를 찾아간다. 소설가를 다시 만나면서 그녀는 그녀가 그린 환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누나가 소설가를 만나던 밤- 동생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결론에는 누나는 소설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소설가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지만 소설가와 관계없이 자신은 그 아이를 희망 삼아 이 삶을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겠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설이 끝이 난다.


나름대로 줄거리를 요약했는데, 엉성한 구석이 많다. 내용의 디테일한 부분에는 동생과 누나의 심리묘사 그리고 변해가는 그들의 삶과 그 시대에 대한 묘사들이 주를 이룬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대표작인 '인간실격'도 읽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도 '사양'의 남동생과 맥이 닿아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다자이 오사무가 경험하고 생각한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몰락한 귀족 집안, 공산주의와 예술, 재산이 있었다 없어지게 되면서 겪는 정신적 다급함, 도피처로 술, 마약, 여자를 찾아도 도피되지 않는 삶, 결국 사람과 인생에 회의,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인해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특히 '사양'의 남동생의 유서는 미리 쓴 다자이 오사무의 유서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자주 찾아오던 어떤 여성(오타 시즈코)의 일기를 모티브로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를 다자이 오사무에게 건네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는데, 이 일기를 건네준 여인은 다자이 오사무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아내 이외의 여인이니 혼외자인 셈이다.


'사양'의 누나가 아이를 낳은 후 다지는 삶에 대한 각오는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한 그녀(오타 시즈코)가 가장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 답안지를 소설로 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는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다.


책 뒤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쓴 원작 일기를 책으로 내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생활고를 타계하려 했지만, 세간에 좋은 시선과 평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감상문을 쓰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야기를 썼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 아직도 읽힐 수 있다는 것은 그 시대의 모습과 함께 자신의 고뇌를- 어쩌면 시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을 세상에 대한 허무와 인간에 대한 회의를 과감하게 글로 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맥이 닿는 충격이 나에게 있었다.


'사양'을 읽은 지는 1달이 지났고, '인간실격'을 읽은 지는 2주가 지났다. 이 독서감상문을 시작한 건 3주 전이었다. 독서 감상문이 이토록 쓰기 어려운 것이구나를 이번에 많이 느꼈다. 책의 기온도 내가 받은 정신적 영향의 기온도 제대로 담아 같은 날씨로 재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자이 오사무와 일본 문학에 대한 공부가 있는 사람도 아니어서 내 생각에 대해, 전하는 정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그렇게 쉽게 독서 감상문으로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나에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명쾌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오늘 이 독서 감상문을 마무리한다.

(유감인건 자살과 마약이다. 그 둘은 그 어떤 해답도,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다.)


* "사양"은 출판사"소와다리"에서 나온 것으로 읽었습니다. (책 표지는 메인 사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더운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