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친 작은 복서? 이야기
동네에서 커피 한 잔 사마시는 작은 사치를 누리려던 날이었다.
익숙하게 나가려던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당황스럽게도 사마귀를 만났다. 처음 든 생각? '이거 진짜 사마귀야?' 두 번째 든 생각? '백 년 만에 보내. 어릴 때 이후로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세 번째 든 생각? ' 얘 풀밭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 있지?' 네 번째 든 생각? '나 어떻게 나가ㅠ.'
양쪽 투명문이 한쪽은 고정되어 있고, 내 기분 상 내 팔 한쪽 정도 되는 다른 쪽 투명문은 열려있었다. 근데, 사마귀는 애매하게도 그 고정문과 열린 문의 그 중간에 서 있었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서 있었다" 마치 공격적인 복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두 다리를 들어 키가 한껏 커진 녀석은 양손을 거의 완벽히 복싱의 기본 포즈를 하고 서 있었다.
내가 커도 이 녀석보다는 약 백배는 클 것 같은데, 나는 이 녀석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공격적인 분위기에 멈춰서 있었다. 완벽한 복서였다.
나는 근 3개월 정도 복싱을 하다 그만두었다. 이유는 종합하면 나의 체력 문제였다. 그렇지만 복싱할 때 느꼈던 그 상쾌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링 위의 3분을 버티는 그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은 링 위에 서봐야 알 수 있다. (3개월짜리도 아는 상쾌함과 성취감이니 한 번 믿어보시길.)
어쨌든 녀석은 복서의 모든 것을 갖췄다. 강력한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괜한 근육처럼 보이는 부풀려진 낫 형태의 팔, 그리고 재빠른 다리 스텝에 본능적인 공격 스킬 구사까지.. 복서 팬츠만 입지 않았지 정말 작은 복서였다.
그 현관 앞에서.. 나가야 하는 백배 큰 나는.. 그 녀석이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나의 발걸음 위로 덮칠까. 혹은 자세를 바꿔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벌일까.. 갖은 불안감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 길로 집에 들어가서 시간을 벌고 나오는 것. 그러면 어디론가 이 녀석은 다른 곳으로 유유히 도전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적수를 만나러 갈지 모르는 것이다.
100배나 큰 내가 그 녀석에게 겁을 먹는 건, 예측 불가능 하다는 것 하나.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생명체라는 것 하나.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든 다 덤벼라"의 자세와 그 기운이었다.
자신보다 큰 세상에서 그 녀석은 계속 뭐든 다 덤비라며 그 자세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무모한 걸까. 세상 물정 모르는 건가. 아니면 겁이 나서 방어태세인가. 그러다간 세상 피곤해서 못살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녀석과 나는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잽싸게 발을 내디뎌 최대한 뛰지 않는 느낌으로 - 아마도 그 녀석에게는 쿵쿵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겠지만- 나는 커피를 향해, 녀석을 피해 가는 데 성공했다.
기분 좋은 햇빛을 쬐며- 돌아오는 길에 그 녀석이 거기 없기를. 원래의 그라운드인 풀밭으로 돌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요새 연예인들이 같은 제목으로 드라마를 찍어서 나타난 겐가. 그 드라마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섬찟한 제목이지 아니할 수 없다.
다행히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온 현관에 그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난 그 녀석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다음에도 손자병법 36계를 실천할 예정이다. 백배 이상 내가 커도 난 그 녀석과 싸울 준비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살이도 이런 걸까. 어쩌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게 된거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황스러운 일이 지나간다. 글을 쓰면서도 녀석이 떠올라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어쨌든, 녀석은 천생 복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