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시대 (1)

100-93

by 매그넘

2052년 여름, 강원도 산불이 3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SR-9 시리즈 100대가 화염 속으로 들어갔다. 인간 소방관들은 후방에서 드론 영상을 보며 로봇의 동선을 지휘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들이 직접 뛰어들었다. 지금은 화면을 보며 버튼을 누른다. 사망자는 줄고 효율은 올랐다. 2044년 이후 소방관 순직자는 단 세 명이다. 기적 같은 숫자였다.


SR이 고립된 마을에서 주민 서른두 명을 구해냈다. 뉴스는 '로봇, 또 한 번 기적을 만들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할 영웅은 없었다. 로봇은 말이 없고, 소방관들은 현장에 없었으니까. 구조된 할머니가 로봇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SR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세요'라고만 답했다.


같은 달, 30년 근무한 소방관이 은퇴했다. 후임은 충원되지 않았고 그의 자리는 SR 두 대로 대체됐다. 은퇴식에서 그는 직접 구조한 사람들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로봇도 데이터로 기억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경비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국경과 항만에 배치된 SR-P 시리즈는 24시간 순찰하며 불법 입국자를 색출했다. 적외선 센서, 안면 인식, 행동 패턴 분석. 인간 경비원이 놓치던 것들을 로봇은 놓치지 않았다. 2051년 한 해 동안 적발된 불법체류자 수가 전년 대비 340% 증가했다.


문제는 외교였다. 숫자가 드러나자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한국은 중국에 '너희 국민이 가장 많다'라고 했고, 중국은 '단속 방식이 인권 침해'라고 받아쳤다. 일본은 한국에 '우리 쪽 불법체류자 데이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너희 쪽 먼저'라고 맞섰다. 동남아 국가들은 '로봇이 우리 국민을 범죄자 취급한다'며 공동 성명을 냈다. 로봇은 법대로 했을 뿐이다. 감정도, 편견도, 정치적 고려도 없다. 그런데 숫자가 적나라해지자, 서로가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만들어낸 건 효율만이 아니었다. 감춰져 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녁 뉴스가 산불 진압 완료를 보도했다. 사망자 0명, 전원 구조. 기적이었다. 하지만 화면에 영웅의 얼굴은 없었다. 은색 로봇들이 줄지어 스테이션으로 복귀하는 장면만 흘러나왔다.


어느 시청자가 댓글을 달았다.


'다친 사람 없어 너무 다행이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건데, 왜 이리 허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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