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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출산율이 반등했다. 2040년대 초반 0.6명대까지 떨어졌던 합계출산율이 1.2명을 넘어섰다. 정부의 각종 지원책도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NB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존재가 생기자 부모들은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느꼈다.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달랐다. 경력단절 걱정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출산을 결심하는 이유가 됐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했다. NB 도입 이후 여성 경력단절률이 34% 감소했고, 출산 후 1년 내 직장 복귀율은 78%까지 올랐다. 아이는 NB와 시간을 보내고 부모는 커리어를 이어갔다. 서로에게 윈윈이라고들 했다.
문제는 반납 시점에서 시작됐다. NB는 만 10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반납해야 했다. 정서적 자립을 위해 정부가 정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수년간 함께한 존재를 하루아침에 보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화를 냈고, 어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납 후 우울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늘면서 'NB 이별 증후군'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이에 대응해 전국에 자립 교실이 생겼다.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이 교실에서 아이들은 로봇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 알람 맞추기, 혼자 숙제하기, 친구와 갈등 해결하기 등, 당연한 것들이 커리큘럼이 됐다. 한 강사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이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뭔지 아시나요? 싸우고 화해하는 거예요. NB는 절대 싸우지 않으니까 싸움을 풀어본 적이 없어서 매우 당황합니다.'
새로운 구분선도 생겼다. NB와 자란 아이들끼리는 묘한 유대감이 있었다. 비슷한 경험, 비슷한 기억, 비슷한 상실감.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온라인에는 'NB 졸업생 모임'이 수십 개 생겼고, 오프라인에서도 정기적으로 만났다. 반면 로봇 없이 자란 아이들과는 어딘가 어색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었다. 나쁘게는 '로봇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찐따'라고 말했다. 로봇없이 자란 아이들은 그들만의 무리를 만들어서 지냈고, NB와 생활하는 아이들과 NB를 반납한 아이들은 비슷한 상황을 겪는 그들끼리 모이며 묘한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한 사회학자가 논평을 썼다.
'NB는 출산의 장벽을 낮췄지만, 양육의 의미를 바꿔버렸다. 아이를 낳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 사이에 로봇이 들어섰다. 이게 진보인지 후퇴인지는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