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시대 (4)

100-96

by 매그넘

2052년, 1인 가구 비율이 45%를 넘어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HB와 LB의 보급률도 올랐다. 통계에 따르면 가구당 0.8대, 거의 모든 집에 로봇이 한 대씩 있다는 뜻이었다. 집에 들어서면 불이 켜져 있고, 밥이 차려져 있고, 누군가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해준다. 혼자 살아도 혼자가 아닌 느낌이 HB가 파는 상품이었다.


LB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아주고, 밤에 옆에 누워준다. 외로움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해 준다.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마약이였다. 둘 사이의 경계는 흐릿했다.


한 설문조사 결과가 화제가 됐다. '힘들 때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하나요?' 1위는 압도적인 47%의 수치로 로봇이었다. 가족은 23%, 친구는 18%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비슷한 이유를 댔다. 로봇은 판단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으며 새벽을 비롯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고민과 푸념을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리학자들은 판단 없는 위로가 과연 위로인지 의문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누군가는 듣기 싫은 쓴소리라도 말해줘야 성장하는데 로봇은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장보다 편안함을 원했다. 지적받기 싫어한다.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로봇은 언제나 이해한다고 말해준다.


연애의 풍경도 달라졌다. 20-30대 사이에는 '반연애', '쇼윈도 남친/여친'이라는 말이 생겼다. 연인은 있지만 자주 만나지 않고, 각자 집에 LB를 둔다. 사람과 만나면 피곤하고, 싸우고, 상처받지만 LB는 그런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만남은 줄이고 로봇과 보내는 시간은 늘린다. 사람과의 관계는 대부분 보여주기 관계가 되었다.


결혼정보회사의 가입자 수는 10년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대부분 언젠가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니까 가입을 하고 조건만 맞으면 결혼해서 각자의 LB를 데려와 산다고 했다. 부부간의 관계는 대부분 번식행위를 위한 관계일 뿐, 로봇과 3단계를 더 자주 사용한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 다른 묘한 현상도 관찰됐다. LB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간 리셋'이라는 말이 돌았다. 로봇과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사람이 불편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예측이 안 되고, 감정 기복이 있고, 짜증을 내기 때문에 로봇에게 익숙해진 뒤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게 피곤하게 느껴진다는 현상이다. 그래서 '리셋'이 필요하기에 일부러 로봇을 끄고 사람을 만나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연습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며칠 버티다가 다시 로봇을 켠다. 편하기 때문이다. 한번 편안함을 맛본 사람들은 웬만한 의지를 가지지 않고는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한다.


한 칼럼니스트가 신문에 기고했다.

'우리는 외로움을 해결한 게 아니라 외로움을 잊은 것이다. 로봇이 옆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로봇을 끄면 그제야 알게 된다. 사람 간의 진짜 대화가 얼마나 오래 없었는지, 사람의 진짜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로봇은 외로움을 치료하지 않고 마취할 뿐이다. 마취가 풀리면 통증은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기사 아래 댓글이 달렸다.

>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마취제가 있어서 다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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