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시대 (7)

100-99

by 매그넘

2052년 12월 중순,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시는 분주했다. 여기저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고, 백화점과 여러 건물에는 화려한 조명이 설치되었다. 사람들과 로봇들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혼자 걷는 사람, 로봇과 걷는 사람, 로봇 두 대와 걷는 가족 등, 몇 년 전만 해도 시선을 끌었을 풍경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로봇과 함께 거리를 걷는 것은 더 이상 낯설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다.


2030년 초, 공장, 건설현장, 물류센터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대중들과 처음 마주한 구조로봇, 그리고 돌봄 로봇 시리즈들로 확장되어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기까지 고작 10여 년이 되었다. 로봇으로 인해 사라진 시장이 있는 반면 신설되어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세워졌다.


가장 주목받는 시장은 로봇 외피를 제작하는 회사들이다. 기본형부터 커스텀형까지 선택지가 넓어졌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캐릭터, 가상 인플루언서 등, 인기 있는 외모는 대량 생산됐고, 독특한 외모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똑같은 얼굴의 로봇이 서너 대씩 지나가는 일도 있다.


문제는 연예인 외피였다. 초상권 분쟁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얼굴과 외형으로 외피를 제작했다가 소속사에 고소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업체는 은퇴한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본떠 외피를 팔았다가 거액의 합의금을 물었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초상권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기 시작했다. 공식 라이선스 외피를 고가에 출시했다. 비공식 외피를 신고하는 전문 업체까지 생겼다. 새로운 산업이었고, 새로운 갈등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서울시가 발표를 했다. 주요 인파 밀집 지역에 SR-9 시리즈를 집중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명동, 강남역, 홍대입구, 이태원, 코엑스 지역에 50대가 추가 투입된다. 보신각 타종 행사에는 100대가 대기한다. 압사 사고 예방, 응급 환자 이송, 화재 초기 진압. 로봇이 사람을 지킨다. 사람들은 안심했다. 예전에는 경찰과 소방관이 하던 일이었다. 지금은 로봇이 한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다.


보신각 타종 행사가 다가왔다. SR 100대가 종각 일대에 배치됐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파 밀집도 실시간 모니터링, 위험 구역 자동 차단, 응급 환자 30초 내 이송. 인간 경찰은 후방에서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로봇이 다 하기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카운드 다운이 시작되었다. ... 5, 4, 3, 2, 1!

뎅-

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로에게 말한다. 손을 잡고, 안아주고, 웃었다. 로봇들은 그 사이에 사람들과 함께 미소 짓거나, 사고를 경계하거나, 출동을 대기하고 있다.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새해 첫날, 해가 떴다. 거리에는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환경미화 로봇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청소를 시작했다. 묵묵히, 빠르게, 불평 없이. 몇 시간 후면 거리는 깨끗해질 것이다. 인간이 만든 혼란을 로봇이 치운다. 인간이 만든 문제를 로봇이 해결한다.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자주.


어딘가에서 SR이 순찰을 돈다. 어딘가에서 CB가 노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경청한다. 어딘가에서 NB가 아이를 안고 노래를 재생해 준다. 어딘가에서 HB가 커피를 내리고, LB가 무릎베개를 해준다.


1980년대, 빌 게이츠는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설치될 것이라 했다.


2000년대, 스마트폰이 모든 사람들 손에 들렸다. 사람들 간의 연결이 쉬워졌고, 단절도 쉬워졌다.


2052년, 로봇이 모든 곳에 들어왔다. 머지않아 모든 사람 옆에 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로봇의 시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