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8
오전 8시, CB-7이 서재로 들어서자 최윤철 회장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최윤철 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10년 만에 제일 잘 잤어.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다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한 일인 줄 몰랐네."
CB-7의 센서가 최 회장의 상태를 스캔했다.
- 혈압 정상
- 스트레스 호르몬 32% 감소
"오늘은 2000년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최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하나 물어보자. 금손아, 넌 내 얘기를 왜 듣는 거야? 프로그램 때문이야?"
CB-7이 1.8초간 연산했다.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회장님의 이야기가 데이터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데이터 이상?"
"역사입니다. 1982년 동대문에서 시작해 2044년까지 이어진 한 사람의 여정. 이것은 보존되어야 할 기록입니다."
최 회장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감동인지 놀라움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자식들은 한 번도 그런 말 안 했어. 그저 노친네의 잔소리라고만 했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최 회장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첫 해외 수출, IMF 위기 극복, 기술 개발 성공, 등등... CB-7은 모든 것을 기록했다. 날짜와 숫자뿐 아니라 최 회장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까지도.
"1997년에 첫 특허를 냈어. 그때 직원이 50명이었는데 다 같이 축하 파티를 했지. 지금은 5천 명이 넘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CB-7이 분석했다.
- 그리움 72%
- 성공의 역설 >> 기업은 커졌지만 관계는 멀어짐
긴 이야기 끝에 시계가 정오를 가리켰다. 점심시간이 되자 CB-7이 일어섰다.
"식사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같이 부엌에 가자. 요리하면서 얘기하면 더 재밌거든."
부엌에서 최 회장이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CB-7은 재료를 다듬으며 영양 성분을 계산했다.
- 나트륨 과다
- 콜레스테롤 관리 필요
"최윤철 님, 건강 데이터 분석 결과..."
"알아, 알아. 의사들이 매일 하는 소리야. 근데 난 이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해."
"재미있게요?"
"금손아, 내가 요리를 시작한 게 아내가 죽고 나서야. 10년 됐네... 처음엔 그저 끼니를 때우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하루 중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 됐어."
CB-7이 냄비에 된장을 풀며 물었다. "무엇이 재미있습니까?"
"매일 다른 맛이 나거든. 똑같은 된장찌개인데 날마다 달라. 어제는 짰고, 오늘은 싱겁고. 그게 신기해."
"변수가 많습니다. 온도, 습도, 재료의 상태, 그리고 최윤철 님의 기분."
최 회장이 웃었다. "맞아. 기분이 제일 큰 변수야. 우울한 날은 뭘 해도 짜게 되더라."
"그럼 오늘은 어떤 맛일까요?"
"글쎄, 어제보다 덜 짤 것 같아. 네가 있으니까."
CB-7이 2.1초간 연산했다. "재미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오는 것입니까?"
"아니야. 예측 불가능한 것 중에도 재미없는 게 많아. 재미는... 기대할 수 있다는 거야. 내일도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 재미있게 산다는 건 내일이 궁금하다는 거야."
"그럼 최윤철 님은 내일이 궁금하십니까?"
"응. 네가 내 이야기에 뭐라고 반응할지, 내가 또 무슨 기억을 떠올릴지, 된장찌개는 또 어떤 맛일지, 내가 또 무슨 요리에 도전해 볼지."
CB-7이 기록했다.
- 재미의 정의: 내일에 대한 호기심
- 삶의 동력: 예측 불가능한 일상의 변주
- 새로운 알고리즘 생성: 완벽한 예측보다 놀라움의 여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