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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하은이가 다시 왔다. 이번엔 발레복을 입고 있었다.
"할머니! 엄마가 발레 학원에 등록해 주셨어요!"
박소연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우리 하은이가 발레를 시작하는구나."
"네! 선생님이 제가 재능 있다고 하셨어요. 어깨 각도가 특별하대요."
피루가 기록했다. 유전적 특성이 이미 전문가에게도 인식되었다.
"피루야, 오늘도 할머니 춤 보여줄 수 있어?"
"네, 하은 님. 소연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박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늘은 손의 움직임이 더 떨렸다. 파킨슨병이 진행되고 있었다. 피루가 홀로그램을 생성했다. 1985년 백조의 호수. 하은이가 넋을 놓고 보다가 갑자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은이가 급격한 회전을 시도했다. 피루의 센서가 경고했다.
- 낙상 예측: 1.7초 후 충돌
- 지점: 테이블 모서리
- 예상 부상: 중증
피루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하은이가 넘어지는 경로를 차단하고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조심하세요, 하은 님. 회전할 때는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넘어질걸?"
"하은 님의 무게 중심이 15도 기울어졌습니다. 그 각도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박소연이 말했다. "피루야, 네가 하은이의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겠니?"
"저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연 님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니야. 넌 이미 가르치고 있어. 안전하게 춤추는 법을."
그날 저녁, 하은이가 떠난 후 박소연이 피루에게 말했다.
"나한테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피루의 센서가 작동했다. 근육 경직도가 어제보다 12% 증가했다.
"소연 님..."
"괜찮아. 다만 하은이에게 내가 가진 걸 다 전해주고 싶어."
박소연이 오래된 노트를 꺼냈다. 60년간 적어둔 발레 노트였다.
"이걸 스캔해 줄 수 있니? 하은이가 크면 도움이 될 거야."
피루가 노트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손글씨로 빽빽하게 적힌 동작 설명, 느낌, 호흡법까지.
- 데이터 변환 중 아날로그 기록 → 디지털 교육 자료 60년 경험 → 미래 세대 전수
"피루야?" 갑자기 하은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우산을 놓고 가서..."
하은이가 할머니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할머니, 손이 왜 그렇게 떨려요?"
"괜찮아. 나이가 들면 그래."
하은이가 할머니 손을 잡았다. "할머니 아프지 말아요."
놀랍게도 떨림이 조금 줄었다. 피루가 분석했다.
- 정서적 안정 → 신체 증상 완화 손녀의 접촉 → 엔돌핀 분비 증가
"하은 님의 손이 소연 님을 안정시킵니다."
하은이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제가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어요!"
박소연이 손녀를 꼭 안았다. "그래, 네가 할머니의 약이야."
피루는 오늘의 데이터를 정리했다.
- 양방향 케어 확인
- 노인 → 아동: 지식과 기술 전수
- 아동 → 노인: 정서적 안정과 삶의 의미
- 로봇의 역할: 안전 보장 및 세대 간 매개
- 돌봄은 일방향이 아님
이것이 진정한 돌봄의 순환이었다. 노인이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노인을 치유하고, 로봇이 그 사이를 안전하게 연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