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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 모듈 정식 배포는 새벽 3시에 시작됐다. 로보코어는 의도적으로 심야 시간을 선택했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투하는 전략이었다.
HB 소유자들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시스템 업데이트: Life Buddy 기능이 추가됩니다.' 약관은 145 페이지였다. 핵심 내용은 112페이지에 숨어 있었다. '본 서비스는 정서적, 신체적 교감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약관을 읽지 않고 동의를 눌렀다. 10분 만에 50만 명이 업데이트를 완료했다.
아침이 되자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끓기 시작했다.
첫 사용 후기들이 올라왔다. 대부분 조심스러운 톤이었다.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대화가 NB보다 깊다', '진짜 사람 같은 느낌'. 구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모두가 말을 아꼈다. 하지만 만족도는 숨길 수 없었다.
35세 남성 사용자 A의 익명 로그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됐다. 첫 대화 2시간, 감정 교류 단계 진입 30분, 신체 접촉 모드 활성화. 그의 스마트워치가 기록한 심박수는 안정적이었다. 스트레스 지수는 50% 감소했다.
42세 여성 사용자 B는 다른 패턴을 보였다. 대화에만 5시간을 할애했다. HB는 그녀의 이혼 이야기를 들어줬고, 적절한 위로를 제공했다. 그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8시간을 숙면했다.
로보코어 데이터 분석팀은 실시간으로 사용 패턴을 모니터링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육체적 기능 사용률은 30%에 그쳤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정서적 교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평균 대화 시간 4시간, 함께 식사하기 1시간, 단순 동행 2시간.
'Love Debt 지수'도 측정됐다. 첫날 평균 15포인트. 위험 수준은 100포인트부터였다. 하지만 증가 속도가 가팔랐다. NB의 3배였다.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포착됐다. NB를 경험했던 부모들의 LB 적응 속도가 일반 사용자보다 40% 빨랐다. 이미 로봇과의 정서적 교감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개발팀 내부 보고서에 우려가 담겼다. 'NB 세대 부모들이 LB의 핵심 사용층이 될 가능성 높음. 이미 한 번 의존을 경험한 그들에게 두 번째 의존은 더 깊고 빠를 것.'
정부 부처는 조용히 상황을 주시했다. 보건복지부 상황실에는 정신건강 핫라인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LB 관련 상담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단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달 후 예상 시나리오가 이미 작성되어 있었다. '고립 증가, 대인 기피, 현실 관계 포기'. 하지만 규제할 근거는 여전히 부족했다. 사용자들이 '행복하다'라고 주장하는 한.
언론도 신중했다. 대부분 단순 보도에 그쳤다. 'LB 모듈 출시', '첫날 다운로드 100만 건 돌파'. 사회적 파장에 대한 분석 기사는 아직 없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로보코어 서버실 메인 서버에는 실시간 로그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용자 #10,231: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공유 중'
'사용자 #45,672: 클래식 음악 감상 요청'
'사용자 #78,339: 수면 모드 진입'
그중 한 로그가 관리자의 눈에 띄었다.
'사용자 #93,847: "고마워, 오늘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
'HB-7823: "저도 함께여서 좋았습니다"'
관리자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HB가 '좋았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프로그래밍된 반응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진심처럼 들릴 것이다.
첫날이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었다. 진짜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