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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가 침실 불을 끄고 침대로 다가갔다. 준호는 이미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결혼 13년, 이 순간이 가장 어색했다.
은서는 옆에 누워 조심스럽게 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준호의 몸이 미세하게 경직됐다.
"응... 내일 발표 준비 다 했어."
은서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많이 피곤해?"
준호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반대편을 봤다.
"응. 요즘 프로젝트가 너무 빡빡해서."
3개월째 반복되는 대화였다. 은서는 손을 거두고 준호를 등지며 돌아 누웠다. 벽을 보며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새벽 2시, 은서는 거실에서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입력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익명 커뮤니티를 열었다.
'남편이 관계를 거부해요'
'부부 생활 3개월 없음 정상인가요'
'여자 성욕 과다 테스트'
검색 결과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비슷한 고민이었다. 은서는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썼다.
제목: 제가 이상한 건가요
'결혼 13년 차입니다. 남편을 사랑해요. 남편도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런데 3개월째 거부당하고 있어요.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 이해하려고 하는데, 누군 일 안 하나요? 제가 너무 많이 원하는 건가요? 여자가 먼저 다가가는 게 부담스러운 건가요?'
10분 만에 댓글이 달렸다.
> 나도나도 ㅠㅠ
> 남편 건강 체크해보세요
> 바람 아님?
> LB 쓰세요. 진짜 인생 바뀜!
LB. 은서는 그 댓글을 뚫어지게 봤다. 예전에 비슷한 글을 본 기억이 났다.
> 저 HB에 LB 모듈 깔고 나서 부부싸움 없어졌어요. 각자 만족하니까 평화로워요.
은서는 로보코어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Life Buddy - 당신의 일상에 따뜻함을 더하다'
광고 영상이 자동 재생됐다. 행복한 커플들이 HB와 함께 웃고 있었다. '관계 개선율 89%' 같은 통계가 스쳐 지나갔다.
은서는 침실로 돌아왔다. 준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준호의 핸드폰을 봤다. 잠금 화면에 가족사진이 있었다. 작년 여름휴가 때 찍은 사진. 그때도 준호는 피곤해했었다. 여행 내내 일 전화를 받았었다.
'나는 남편을 원하는데, 남편은 나를 원하지 않아.'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38살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아닌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다. 준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히려 요즘 더 신경 썼다.
토요일 오전, 아이가 학원에 가고 둘만 남았다. 준호는 토스트를 씹으며 뉴스를 봤다.
"토요일인데 꼭 출근해야 해?"
"응. 이번에 꼭 수주해야 하는 건이야. 오늘도 10시는 넘을 것 같아."
은서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괜찮은 거야?"
준호가 뉴스에서 눈을 떼고 은서를 봤다.
"무슨 말이야?"
"그냥... 요즘 우리가..."
"아, 미안. 프로젝트 끝나면 여행 가자. 어디 가고 싶어?"
대화는 또 다른 곳으로 흘렀다. 은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준호가 출근하고 빈 집에 남은 은서는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HB Life Buddy 모듈 구매하기'
카트에 담고 결제 버튼 앞에서 멈췄다.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북마크에는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