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7
아침 7시. 준호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자기야, 나 들어가서 면도해도 돼?"
"응, 들어와!"
샤워 소리가 계속됐다. 준호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 가려다 은서의 핸드폰 화면이 켜지는 것을 봤다.
'ㅇㅇ 부부클리닉: D-5 상담 예약 알림. 7월 3일 오후 2시. 혼자 오셔도 됩니다.'
준호의 손이 멈췄다. 부부 상담. 그것도 혼자 가려고 했다는 것.
면도하는 것도 잊고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알림이 사라지고 검은 화면만 남았다.
"여보, 뭐 해? 늦겠다!"
은서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왔다. 준호는 은서의 알림을 못 본 척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회사에 도착한 준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검색창에 'ㅇㅇ 부부클리닉'을 입력했다. 전문 분야가 나왔다. '성생활 불일치, 무성애 부부, 관계 회복 프로그램'.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근 3개월을 돌아봤다. 매번 거절한 것은 자신이었다. 스트레스, 피로,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자신감. 은서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화장실에서 동료 김 과장을 만났다.
"이 과장, 뭔 일 있어?"
"아... 집안일로 좀 피곤해서."
"HB 들여봐. 삶의 질이 달라져."
"HB? 그거 쓸만해?"
"완~전! 집안일도 하고 말동무도 잘해줘서 와이프랑 나랑 대만족 중이야."
"그... 부부 사이에 문제 안 돼?"
"오히려 해결책이야. 서로 부담 없잖아."
퇴근길, 준호는 꽃집에 들렀다. 은서가 좋아하는 리시안셔스를 샀다. 집에 들어서자 은서가 놀란 표정으로 준호가 건네주는 꽃을 받았다.
"무슨 일이야?"
"그냥... 미안해서."
은서의 눈가가 붉어졌다. 준호가 은서를 꼭 끌어안았다. 오랜만의 포옹이었다.
"오늘 아침에... 네 핸드폰 알림 봤어. 부부 상담."
은서가 몸을 경직시켰다.
"아..."
"혼자 가려고 했어?"
은서가 준호를 밀어내고 뒤로 물러섰다.
"당신 탓하려고 그런 거 아니야."
"알아. 나 때문인 거 알아."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은서가 리시안셔스의 향기를 맡았다. 준호는 은서를 바라보다 마음을 굳히고 말을 꺼냈다.
"자기야, HB 사자. LB 모듈 포함해서."
은서는 준호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봤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오늘 김 과장이 그러더라. LB 쓰고 나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고. 각자 부담 없어지니까."
"그래서 로봇한테 맡기자고?"
준호가 은서의 손을 잡았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줄 수 없는 걸... 다른 방법으로라도."
은서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원하는 건 자기야."
"나도 그래. 근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병원도 이미 가봤다고."
"생각 좀 해 보자."
일주일 후, 두 사람은 로보코어 홈페이지를 함께 봤다.
외형 선택 화면에서 은서가 망설였다. 준호가 먼저 말했다.
"남성형으로 해."
은서가 준호를 봤다. "정말... 괜찮겠어?"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목구멍이 쓰렸다. 안도감과 패배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네가 행복하다면..."
주문을 완료하고 두 사람은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고마워... 이해해 줘서." 은서가 말했다.
준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해라기보다는... 도망인 것 같기도 해."
"우리 도망치는 거 아니야. 그냥... 다른 방법을 찾는 거지."
그날 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 여전히 서로를 만지지 않았지만, 손은 맞잡았다. 며칠 후면 LB모듈이 탑재된 HB가 도착한다.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랐다.
준호는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아내를 위한 선택을 한 걸까, 나를 위한 선택을 한 걸까?'
은서도 잠들지 못했다.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이미 결정했는걸...'
침묵 속에서 둘은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