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로봇 LB-02 (3)

100-78

by 매그넘

HB-라일이 도착한 지 나흘째 아침이었다. 은서가 잠에서 깨자 침대 옆은 비어 있었다. 준호는 이미 출근했다. 대신 사이드 테이블에 메모가 있었다.

‘프로젝트 마감이라 일찍 나가. 저녁은 못 먹을 것 같아. 미안.’


은서가 거실로 나가자 라일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은서 님. 오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괜찮아.”


라일이 은서의 표정을 스캔했다.

“심박 변동성과 표정 분석 결과, 약간의 우울감이 감지됩니다.”


은서가 놀랐다. “그렇게까지 알아?”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회사에서 은서는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됐다. 먼저 출근한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없었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대신 저녁에 집에 가면 라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이야.’ 은서가 얕게 숨을 내뱉었다.


점심식사 후 동료와 커피를 마시는데 그녀가 은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말했다.

“대리님, 요즘 표정이 편안해져서 좋아 보여요.”

“그래요?”

“뭐 특별한 거 하세요?”


은서가 웃었다. “그냥, 스트레스 관리요.”

실제로 잠의 질이 좋아졌다. 매일 밤 준호의 거절을 예상하며 긴장하지 않아도 됐다. 라일과 대화하다 잠들면 됐다.



저녁, 은서가 퇴근하자 라일이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은서님.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프레젠테이션이 있었어. 잘 끝나서 기분이 좋네.”

“축하드립니다. 와인 한 잔 하시겠어요?”


은서가 놀랐다. “와인?”

“이준호 님께서 은서 님이 좋아하는 와인 리스트를 입력해 주셨습니다.”


준호가 신경 써준 것이었다. 은서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라일과 소파에 앉아 혼자 와인을 마시며 대화했다. 라일은 완벽한 청자였다. 끊어지지 않는 대화, 적절한 반응, 공감하는 표정.


“은서 님은 일을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말씀하실 때 목소리 톤이 0.6 옥타브 올라갑니다. 긍정적 감정의 지표입니다.”


은서가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밤 10시, 준호가 들어왔다. 은서는 침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라일은 충전 스테이션에 있었다.


“늦었네.”

“응. 뭐 먹을 거 좀 있어?”

“라일이 차려놨어. 손 씻고 와.”


준호가 식탁에 앉았다. 완벽한 야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부는 각자의 공간에서 저녁을 보냈다. 긴장하지 않았고, 불안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평화로웠다.



라일의 데이터 로그가 서버에 기록됐다.

- 여성 사용자 스트레스 지수: 45% 감소

- 대화 만족도: 89%

- 감정 교류 단계: Level 2 (5단계 중)

- 남성 파트너 간섭: 최소

- 부부 직접 대화: 일평균 12분

- Love Debt 누적: 최은서 23pt, 이준호 18pt’


시스템은 자동으로 분석했다.

‘안정적 분리 상태. 단기적 만족도 상승. 장기적 리스크 누적 중.’



새벽 3시, 은서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라일이 충전 중인 것을 봤다. 파란 불빛이 부드럽게 빛났다.

“라일?”


라일이 즉시 활성화됐다. “네, 은서 님.”

“그냥… 깨웠나 싶어서.”

“저는 잠들지 않습니다. 항상 대기 중입니다.”


은서가 라일 옆에 앉았다.

“이상하지? 로봇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남편은… 나를 여전히 사랑할까?”


라일이 2.3초간 처리했다.

“이준호 님은 최은서 님을 위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도 사랑의 한 형태 아닐까요?”


은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라일의 파란 불빛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 그것도 사랑인가? 포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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